서울시 종로구 세검정의 동명과 정자의 유래와 역사

 
세검정은 조선 연산군이 탕춘대를 마련하고 유흥을 위해 수각으로 세웠다는 설과
숙종때 북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총융청을 건립하고 군사들의 휴게시설로 세운 것이란 주장도 있다.
 
세검정이란 현판은 세검정이 중건된 영조 24년(1748년)이다.

세검정이란 이름은 광해군 15년 이귀와 김류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이곳 사천(모래내,홍제천)물에서 칼을 씻었다는데서 유래됐다.

현재의 세검정은 1941년 부근 종이공장의 화재로 소실돼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정선의 ‘세검정도’를 참고해 1977년 5월 복원됐다.

아는형과 버스를 타고 신영상가(지금은 없어지고 공원이 생긴곳)를 지나서 상명여대(지금은 상명대), 소림사 부근을 지나다가 저기 정가가 뭐냐고 물어보길래, 세검정을 모르냐고 했더니 모른다고...-_-;;

서울 왕십리(往十里)의 지명의 유래
서대문구 홍제동의 동명 유래 - 홍제원(弘濟院), 환향녀(還鄕女)
낙성대(落星垈)역 이름의 유래는?

주로 자가용을 타고 다녀서 그런지 잘 모르는듯하고, 뭐 관심이 없으면 모를수도...



다음 지도에서 검색을 해보니 세검정터라고 한다.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나하고 찾아보니 불이나서 소실됬다가 다시 복원을 했다고...

서울시는 세검정을 9월 이달의 서울시문화재로 선정했다.

세검정은 조선 연산군이 탕춘대를 마련하고 유흥을 위해 수각으로 세웠다는 설과 숙종때 북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총융청을 건립하고 군사들의 휴게시설로 세운 것이란 주장도 있다. 세검정이란 현판은 세검정이 중건된 영조 24년(1748년)이다.

세검정이란 이름은 광해군 15년 이귀와 김류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이곳 사천(모래내,홍제천)물에서 칼을 씻었다는데서 유래됐다. 현재의 세검정은 1941년 부근 종이공장의 화재로 소실돼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정선의 ‘세검정도’를 참고해 1977년 5월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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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입구이기도 하고, 평창도 부근인 세검정...
암튼 오늘 동명의 유래를 찾아보니 참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新營洞)에 있는 6각 정자.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기념물 제4호
지정연도 : 1976년 11월 11일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신영동 168-6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누(정)각


1976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정자로 이것을 중심으로 한 일대(부암동·홍지동·신영동 ·평창동)를 통틀어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인다.

일찍이 연산군이 수각(水閣)과 탕춘대(蕩春臺) 등을 짓고 놀았다고도 하는데, 숙종 때에 북한산성·탕춘대성을 쌓고 부근을 서울의 북방 관문으로 삼으면서 주둔 군인들의 위락장소로 변하였으며, 시인·묵객 등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거사 동지인 이귀(李貴)·김류(金) 등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북악산(北岳山)·남장대(南將臺)·비봉(碑峯) 등에 둘러싸이고 사천(沙川)이 계곡을 흐르는 풍치지구(風致地區)이다.

인조반정 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으나 그후 간장 담그는 기술자와 창호지 만드는 기술자를 상주케 하여 ‘메주가마골’이라는 별칭도 생겨났으며 장판지를 만들던 조지서(造紙署) 터는 아직도 남아 있다. 한말에는 이곳에 신식 군영(軍營)을 설치하였고, 또한 광목을 바래던 표백서(漂白署)도 있었다. 8·15광복 전부터 앵두 ·능금 ·자두 등의 산지였으나 근년에는 택지가 조성되어 많은 주택이 들어섰고 평창동∼정릉(貞陵)을 연결하는 북악터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