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해를 가게되면 꼭 들리는곳이 있다면 바로 낙산해수욕장과 낙산사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던곳이 의상대에서 내려보는 동해바다와 해수관음상까지 올라간후에 후문으로 빠지는쪽에 커다란 나무숲이였다... 당분간은 그 모습을 볼수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울적해진다... |
사진 : 낙산사 일주문 |
이번 낙산사를 태워 버린 산불은 우리 네티즌들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었던가 를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인터넷에는 낙산사를 아쉬워 하는 글이 수없이 돌아 다닙니다. 사진 사이트에서는 '낙산사의 마지막 모습' 등의 제목으로 불타기 전 낙산사를 촬영한 사진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펜션대관령'님이 지난달 26일 촬영해 사진 전문가들의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는 'SLR클럽'에 올린 것입니다. 영영 사라져 버리기 꼭 10일 전의 모습입니다. 사진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하자 '펜션대관령'님은 "이게 낙산사의 마지막 모습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SLR클럽'에 올리지 않았던 다른 사진까지 모두 도깨비뉴스에 보내왔습니다.
그는 "당시는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라 인물 사진이 많았는데 그나마 경치좋은 곳이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찍어 다행"이라면서 "이 사진들을 보며 우리의 소중한 숲과 문화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고 말했습니다.
'펜션대관령'님이 보내온 사진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원통보전
칠층석탑
칠층석탑, 원통보전
칠층석탑, 원통보전
사천왕문
사천왕문
보타락
보타전
보타락
보타전 처마
고향실
고향실
홍예문
해수관음상
출처 : http://www.slrclub.com/bbs/vx2.php?id=theme_gallery&no=185372
도깨비뉴스 리포터 거북이맞 feelsogood@dkbnews.com
바다와 함께 부처된 낙산사..잿더미가 됐습니다. 2005/04/06 09:04 | 추천 1 스크랩 9 |
그곳에는 반드시 감탄사가 붙어 있지 않으면 하나의 고유 명사가 되지 않는다. 창연 망망한 동해와 더불어 오랜 세월을 그 파도 소리에 쌓여서 살아온 낙산사를 어찌하여 감탄부 없이 부를 수 있겠는가...... 커다란 바다는 그의 모든 파도를 가지고 바닷가로 몰려온다. 웅장한 적이다. 그 파도는 영원한 분노를 일으켜 동해안의 모든 바위와 모래밭을 행해서 몰려온다. 여행자는 바다 앞에서 그 바다가 아무리 커다란 파도를 거품이 되게 하는 패배를 되풀이하더라도 사람보다 거대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기 시작한다. 한낱 터럭에 비유되는 자기 자신 앞에서 바다는 너무나 큰 것이다. 누가 이런 바다 앞에서 '영원'이라든가 '무한'이라는 추상어를 만들지 않는단 말이인가. 동해에 가서 부처가 되지 못하는 바보도 있는가 동해는 부처다 동해는 관세음보살이다 그 바다를 바라보면 바라보는 여행자의 旅愁(여수)야말로 법열인 것이다. 이런 法悅(법열)의 동해 낙산사에 한 여행자는 그가 살아오는 많은 행복을 잠깐 제 주머니 깊이 넣어두고 오직 이 낙산사에 서린 海氣를 대 할 수 있다. ['절을 찾아서' 발췌...낙산사]
신라 문무왕 시대에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 귀국 직후 창건한 절이다. 문무왕이라면 동해에 그의 왕릉을 지정할 정도로 신라 사직과 불교를 함께 숭상한, 불교적인 너무나 불교적인 왕이었다. 그 왕조의 한 불교 지도자는 동해 觀音授記(관음수기)를 받고 절을 세운 것이다. 의상대사는 유학 귀국 직후 동해 바닷가의 석굴 안에 대비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그곳을 그는 낙산이라 불었다. 그가 7일 동안 기도를 회향하자 용천팔부시중이 그를 굴 안으로 인도했다. 거기서 하늘과 바다의 용이 수정 염주 한꾸러미와 여의주 한알을 주는 것을 얻고 다시 7일 동안 기도를 했다. 그리하여 그는 眞身(진신)으로서의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낙산는 무엇보다도 낙산사를 세상에 떨치게 한 조신 스님의 '꿈'이다. 그것을 이광수 소설 [꿈]이 풀어 놓기도 했지만 그꿈이먀말로 불교의 무상관을 잘 알려주는 대설법이다.......
4월 5일.... 문화제등 14동 2시간만에 잿더미로 변해버란 낙산사(강원도 유형문화재 35호)... 강원도 양양의 한 야산에서 일어난 산불은 오후 3시쯤 낙산시로 옮겨 붙었다. 원통보전과 무지개문 누각 고향당 무설전 요사채 범종각등 일부 지방 유형문화재를 포함한 건물 14동이 순식간에 전소 됐고 홍예문 누각이 소실 됐다. 고려 초 발생했던 산불과 몽골침략 그리고 6.25 사변.,,그리고 4월 5일 현재 낙산사 건물 대부분은 6.25 이후 지었기 때문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목조 건축물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동종(보물 479호)은 종각(보물 479호)도 불탔다. 세조가 7층으로 쌓았다는 삭탑(보뭉 499호)과 원통보전을 둘러싼 담징인 원장(강원도 유형문화재 34호)도 큰 피해가 없은 것으로 전해 졌다. 내 번뇌가 있어 여행자 되어 낙산사를 찾아 동해 관세음보살의 지혜를 얻고 싶을때....어떻게 하지...
원통보전, 7층 석탑 등에 불이 밝혀지는 날은 언제일지 몰라도 희무끄레한 불빛이 거기에 달리는 날...난 뛰어가 관세음보살 등불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어둠 저쪽에서 등불이 밝힌 광명이 곧 여래이기 때문이다. 가장 거룩한 적멸적광.....
낙산사 저녁 동종 소리가 낮고 장멈하게 온 몸으로 울려서 퍼진다. 그 동종소리는 곧 봄바람 속에서 없어질 듯 하다가 그 바람 밖으로 빠져 나가서 3천 대천세계로 퍼진다.
합장 본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