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이름만 들었던 스콧니어링, 헬렌 니어링... 얼마전에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읽고 언젠가는 봐야지 했던 그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의 파란만장하고도, 열심히 살아왔던 일생만큼이나 참 길기도 하다...
100세를 사시다가 음식물을 끊고, 운명을 했다는 그... 그 100년동안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오신 분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하셨고,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고..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
사상적인 면에서 본다면 체게바라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만능주의이자 일부 권력층의 독재와 횡포, 전횡의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하지만 체는 직접 자신이 쿠테타에 가담해서 쿠바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지만, 그는 미국정부에 등을 돌리고, 그의 사상을 전파하는 비폭력주의라고 할까? 그런 식으로 사회주의 이론을 알리고, 계몽한다. 그러는중에도 계속 공부를 해가며 자신의 생각을 수정보완해간다.
이런 삶속에서 정부쪽의 탄압으로 대학교수자리에서도 쫓겨나고, 책을 출판하거나, 강연을 할 기회도 거의 없어진 그는 50대때 20세 연하의 헬렌을 만나서 버몬트주에 들어가서 자급농을 시작한다. 먹고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사회에 새로운 삶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속에서 멋진 삶을 살면서 계속적인 자기 나름대로의 투쟁을 해가며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렸다.
책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뭐라 독후감을 쓰기는 좀 뭐하다... 하지만 이 조화로운 삶과 이 책을 읽고나서 가치관이 많이 바뀌는듯한 생각이 든다... 나도 그처럼 살수 있을까? 그처럼 된다면 나는 행복할까?
호치민도 그렇고, 스콧 니어링도 그렇고, 평생을 노력해서 자신이 믿는것에 매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런 사람이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일것이다.
어떤 삶이 옳고 어떤 삶이 틀린것이라고 말할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이 같을때만이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수 있을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원하는것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지...
진지한 사색, 명상속에서 원하는것을 찾고, 단호한 의지와 결단으로 그 꿈과 목표를 이루기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한다.
반골 한평생...비울수록 꽉 차는 삶 |
반골 한평생...비울수록 꽉 차는 삶 - 감추기
수년 전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83)의 생애를 처음 접하며 ‘낯선 감동’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녹색평론」에 소개된 ‘아흔 살의 관점: 헬렌 니어링과의 대담’이라는 글이었다. 맙소사! 1백살을 맞은 스콧 니어링이 곡기를 끊은 채 자발적 의지에 따라 ‘죽음’의 시간을 선택했던 것이다. 더욱 놀란 이유는 53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았던 아내 헬렌의 반응이었다. 아내 헬렌이 남편의 죽음을 담담히 지켜보았다는 사실이었다. 헬렌은 “당신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어요”라는 말로 남편과 이별하지 않았던가. 그 대담을 읽으며 대체 스콧 니어링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던 것은 당연했다. 범인의 저급한 호사 취미였는지도 모른다. 최근 출간된 책 「스콧 니어링 자서전」(원제 The Making of a Radical)은 한 인간의 ‘거룩한 생애’를 오롯이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 책은 언뜻 1854년 출간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Walden)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서술의 의도와 지향점은 사뭇 다르다. 이 은둔자의 고독과 몽상으로 가득차 있다면, 이 자서전은 확고한 신념과 열정이 물씬 풍겨나는 전인의 기록으로 읽혀진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도저한 반역의 정신으로 삶의 충실성을 지향했던 한 인간의 내면 풍경을 이토록 생생한 실체로서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랬다. 이 ‘피의 기록’은 자서전 문학의 새로운 전범 의미뿐만 아니라, 존재의 집을 잊고 사는 우리의 각질화된 삶을 저 밑둥에서부터 반성하게 만드는 성경과도 같은 책이다. 이 거룩한 생애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 극점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짜여졌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제1부와 제2부는 급진주의자 시절의 격정이 행간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그는 줄기차게 싸웠다. 아동 노동 문제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음모 폭로에 이르기까지 그의 입과 붓은 치열한 ‘전투적 열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두 차례나 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심지어---무죄 판결을 받았지만---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는 철저히 ‘부의 유혹’을 경계했다. 가령, 800달러를 주고 산 독일 공채가 무려 6만달러까지 치솟았지만 난로에 던져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이 책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40대 중반에 만난 스무 살 연하 헬렌과의 생활을 기록한 제3부의 기록은 이 책의 압권이다. 죽음의 시간을 맞는 순간까지 ‘생계를 위한 4시간 노동, 지적 활동 4시간, 친교의 시간 4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는 생활 철학을 견지한 대목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 정신을 엿보게 된다. 스콧 니어링은 분명 급진주의자였지만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다. 가령,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명령을 내린 트루먼에게 보낸 편지 구절은 유명하다.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 그뿐 아니다. 추수 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이 온 미국의 축제 기간 중에 자발적 금식을 택했다. 그는 비정한 산업주의 체제와 서양 문화의 야만성을 철저히 거부하고 쉬지 않고 저항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급진주의자보다는 ‘선각자’였다고 볼 수 있으리라. 우리의 경우 감동적인 자서전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정치의 계절’에 양산되는 저급한 회고록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철저한 ‘근본주의’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는 독자들도 없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이 “진실은 그 자체로서 말한다”라는 확고한 신념의 실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독자는 감히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고영직·문학평론가) |
치열한 삶 속에 깃든 평안한 영혼과의 만남 | |
치열한 삶 속에 깃든 평안한 영혼과의 만남 - 감추기
우리는 지금 엄청난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화와 벤처사업이 국가 경제를 주도한다는 보도들을 접할 때, 가치 혼란으로 인한 불안이 사회 전반을 휩쓸 때, 우리들의 일상은 피곤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주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진지함과 느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연대를 고민하는 그런 사람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인간적인 것, 희망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스콧 니어링 자서전’(실천문학사)의 출간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1883년 미국의 한 탄광촌에서 태어난 스콧 니어링은 꼬박 한 세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가 어떻게 급진적 개혁가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저작은 온몸으로 시대의 격랑을 헤쳐 나갔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저작은 그 자신의 말처럼 “한 개인의 기록이기보다는 그 개인이 살아온 시대의 기록”인 셈이다. 자본주의와 전쟁, 그리고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 정책에 반대해 온 그의 이력은 치열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격변의 시대에서도 굴함이 없이 평화주의자로서, 또 생태주의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려 했던 삶은 사상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80세에 이르러 자서전을 쓰는 그는 서문에서 “나는 진리를 추구하고자 애쓰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탐색을 계속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나이를 넘어서 당당하게 살려는 그의 의연한 모습은 독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마지막 장 ‘내 교육의 마지막 학기’는 치열한 삶을 통해서 그가 얻은 바를 집약하고 있다. “치열한 삶은 계속된다. 삶이 있고, 열정이 있고, 목적과 기능과 경험이 있는 한 진보는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대목은 그의 사상과 실천이 위선이 아님을 증명한다. 100세가 되던 1983년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했던 그에게서 치열한 삶 속에 깃든 평안한 영혼과 만날 수 있음은 진정으로 커다란 위안이 되고도 남는다. 다만 좀더 읽기 쉽게 다듬어졌으면 하는 아쉬움과 책 앞쪽에 있는 화보들이 본문 안에 자리했다면 더 편안한 독서와 큰 울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책꽂이에 꽂아 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은 책 한 권을 얻었음은 부인할 수 없겠다. |
저 가을 산을 어찌 혼자! | ||
저 가을 산을 어찌 혼자! - 감추기
언제부턴가, 맑고도 여린 가을 햇살이 싸하게 몸 안으로 들어오면 죽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햇살이 시작하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요.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황홀감인지, 아픔인지 구별할 필요도 없이, 마침내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풀어버리는 가을 산의 가을 햇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헬렌 니어링은 7세기 중국의 시를 인용하면서 남편 스콧 니어링을 추억하고 있네요.“저 가을 산을 어떻게 혼자 넘나. 우리 둘이서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준비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님을 어이할까요. 혼자일수록 아름다운 것은 저릿저릿한 아픔인데. ‘아름다운 삶…’은 스콧을 잃고 한동안 휘청거렸던 헬렌의 자서전입니다. 이별은 사랑의 결과이니, 이별까지도 사랑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사랑이 이별을 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헬렌은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요. “나는 나보다 21살이 더 많은 스콧이 먼저 갈 가능성이 많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 생각은 하지 못하고 지내왔다.”
헬렌은 크리슈나에게 환멸을 느끼고 완전히 떠납니다. 헬렌이 크리슈나를 온전히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스콧을 온전히 만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어렸을 적부터 채식을 했고, 한때 크리슈나를 사랑했던 걸로 봐서 헬렌은 젊은 날부터 영성에 관심이 있었던 거겠지요. 그 관심이 나이든 유부남이었던 데다, 반전(反戰) 운동을 하다 대학에서 쫓겨나 실직자가 된 스콧에게로 인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스콧이 헬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스콧은 아마 땅에 발을 딛고 안정감 있게 살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리고 헬렌이 스콧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도시 중상층의 가정에서 별 어려움이 없이 성장한 헬렌이, 삶을 별 장식 없이 단순화하고 단순화하면서 그 자리에서 날마다 자연과 만나며 영성을 구현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가장 위대한 일은 우리의 작은 자아 속에서가 아니라 우리 삶이 우주 전체와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꾸려가야 하는 것”이라는 이들의 자연주의 철학은 책 말미에 인용한 스티븐슨의 말 속에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나는 별이 빛나는 곳에서 누군가 동반자가 있어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 가까이 누워 있었으면 했다. 남자가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여자와 사는 것은 모든 생활방식 가운데 가장 완전하고 자유로운 삶이다.” |
<도서 정보>제 목 : 역사인물찾기-11 스콧 니어링 자서전
저 자 : 스콧 니어링 저/ 김라합 옮김
출판사 : 실천문학사
출판일 : 2000년 5월
책정보 : ISBN : 8939203860 | 페이지 : 515 | 650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11/13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1917년 반전 논문을 발표하여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바 있는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 그는 위험분자, 과격분자로 내몰려 사회로부터 철저한 소외를 당해야만 했던 인물이다.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추구하며 살다 간 고된 삶의 역정이 깊이 패인 주름살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저자 : 스콧 니어링 |
1883년 미국 한 탄광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자본의 분배문제를 깊이 연구했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앞장서다 해직되었다. 그후 톨레도 대학에서 근무하였으나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주장하다 또다시 해직되었다. 1917년 반전 논문을 발표하여 1919년 연방법정에 피고로 섰지만 배심원들의 30시간에 걸친 긴 숙의끝에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사회로부터 위험분자, 과격분자로 몰려 소외를 당했다. 생의 후반기로 접어든 니어링은 스무 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헬렌 노드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후, 메인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였다. 1983년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
이 책은 완전한 삶을 살아낸 인물의 전형으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스콧 니어링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역경에 찬 삶과 강건한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으로 우리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일찍부터 그가 가진 관심의 영역과 삶의 통찰력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것이 많다. 아동노동문제에 대해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때에 『아동노동문제의 해결책』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았던 1912년에 『여성과 사회진보』를 출간하고 여성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한 흑인을 니그로 등의 경멸적인 호칭으로 부르던 당시에, 미국 내에서 흑인들이 당하는 폭력을 생생히 묘사한 글을 발표하기도 했고, 1933년 저술한 『파시즘』이라는 책에서는 파시즘을 제약없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라고 단언했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려 할 때 니어링은 「거대한 광기」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간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전쟁 기계를 움직이는 역학관계를 상세히 묘사했으며 징집법안을 "비미국적"이며 "헌법정신과 미국의 전통에 명백히 위반되는 법안"이라고 비난했다. 1923년 니어링이 「석유, 전쟁의 씨앗」이라는 논문을 발간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후 60년이 지나 발발한 걸프전은 그의 통찰력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시골에서의 자립농 생활 역시 그가 추구해 온 사회주의에 대한 실현으로써 자연주의로 돌아가 인간본연의 모습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사상적 삶이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가장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의 생애를 뒷받침해 주는 사상을 만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모든 계급사회의 밑바탕에는 '네가 일하고 나는 먹는다'는 원칙이 깔려 있다. 이 원칙은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대신 뿔뿔이 떼어놓는다....."(본문 중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병페가 가져다주는 인간파괴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진정한 극복방안을 찾아나선다. 젊은 시기의 사회주의자적인 면모와 노년의 자연주의적인 면모는 모두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자 거부에서 비롯되었으며 체체 안과 밖에서 실천적으로 대응해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그의 행동을 받치고 있던 것은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점철된 근본주의 사상이었던 것이다.
<줄거리>
<책속으로>
1. 내게 진실로 소중한 것들
어린 시절 나의 스승들
교사의 길을 선택하다
경제결정론에 대한 투쟁
가르치는 자는 생각을 나누지 않으면 안된다
소수 독재체제와의 접촉 그리고 충돌
마침내 총성이 울리다
'인생역경대학'에 등록을 하며
2. 황혼의 마지막 섬광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의 암흑시대
또다시 울리는 총성
서구 문명과 결별하다
뉴잉글랜드의 피난처
3. 새벽 여명
여명을 기다리며
사회주의는 거짓 여명인가
치열한 싸움
내 교육의 마지막 학기
치열한 싸움은 계속된다. 삶이 있고, 목적과 기능과 경험이 있는 한 진보는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일부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이 명백한 사실을 피할 수 없다. 한 개인은 인류 전체의 일부이자 그가 살고 있는 당대 사회적 자연적 환경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좀더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 또는 하나의 이념과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보편적인 진리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게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다.--- p.514-515 |
지금으로부터 1백년 전인 당시에는 호텔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방명록에 자기 이름을 적은 것이 하나의 관습처럼 되어 있었다. 맨 처음 사인을 한 유명한 목사는 자기 이름 뒤에 'D.D.(신학박사)'라고 적었다. 두번째 사람은 'Ph.D(철학박사)'라고 썼다. 샘은 자기 차례가 오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름 뒤에 'L.L.L'이라고 적어넣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학박사가 말했다. "잠깐, 샘. 잘못 쓴 것 같은데. 자넨 대학 문턱에도 가 본적 없잖나?" 그러자 시장이 대답했다. "천만에 말씀. 난 이래봬도 인생의 역경이라는 대학을 다닌 몸이오. 우리 대학 교기의 색깔은 시퍼렇게 멍든 색이고 구호는 '아얏!'이지" "그럼 'L.L.L'은 뭔가?" 샘이 말했다. "그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운다(Learning, Learning, Learning)는 뜻이라네." 나는 인생의 기초를 배우는데 1883년부터 1917년까지 무려 3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내 인생의 처음 삼 분의 일은 다른 사람의 말을 무조건 외우는 간접경험 위주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이 차지했다. 그 시절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비교적 탈없이 지냈다. 샘 존스의 모교인 '인생역경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비로소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다 이수하고 나면 나 역시 'L.L.L.' 학위를 받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pp. 45-46 |
이렇게 제약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상쾌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연구 주제가 바뀔 수 있었다는 점이다. 틀에 박힌 교단생활로부터의 자유을 가능하게 만든 새로운 조건 속에서, 이제 나는 내가 선택한 주제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직접 짜고 변경할 수 있는 일정에 따라 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p. 264 |
버몬트에서나 메인에서나 우리는 기본 식품과 집, 땔감을 스스로 마련하는 자급경제를 유지했으며, 일정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에 따라 생활했다. 우리는 가능한한 시장과 임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이윤을 남기는 경제는 노동력과 현금의 맞교환을 전제로 삼는다. 노동력과 교환환 현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가재도구와 그밖의 필수품을 사는 대가로 시장에서 지출한다. 이러한 방식을 받아들이는 개인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노동시장과 생필품시장과 국가에 맞기는 셈이 된다.--- p. |
미국적 방식이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임금을 삭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가의 결단에 바탕을 둔 것이다. 미국적 방식이란 가난한 자는 현재대로 놓아두고 부자는 더 부유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p.171-172 |
나는 사람들이 진리라고 부르는 흰 새의 멋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냥꾼은 아주 짧은 순간에 그 새를 얼핏 본 뒤로 그 새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냥꾼은 새를 찾아다니다가 쓸쓸히 죽는다. 그 사냥꾼처럼 나는 인생의 자질구레한 일상사를 제쳐두고, 진리를 찾고 이해하고 가르치고, 진리가 내가 속한 사회의 생활패턴 속에서 구현되도록 돕는데 시간과 정력을 바치기로 작정했다. 나는 진리를 추구하고자 애쓰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탐색을 계속하고 있다.--- p.92-93 |
나는 대공황을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도박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 주식시장(미국 최대의 도박장)과 부동산시장(주식시장보다는 도박성격이 덜 하지만 규모는 훨씬 큰)과 경마장과 여타의 빠르고 손쉬운 수입원에서 광적인 형태로 발현된 바 있는 사기업 경제의 논리적 귀결로 보았다. 대공황은 전쟁으로 인한 번영과 전쟁 모험주의에 대한 반작용의 일부이자, 군수경기가 시민경제로 전환되면서 흔히 나타나는 불안정한 현상이었다.--- p.329 |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 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로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p38)--- p.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