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 피지에서 만난 행복 vs 알프스 된장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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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나라 피지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애들을 낳아서 키우는 김지선씨의 이야기...
이 놈의 나라가 성개념이 상당히 개방적이여서 위에 두딸은 각각 백인과 원주민이고 그 밑에 둘은 직접 낳고, 하나는 잠시 한국에 들어가 있던 사이에 원주민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란다...-_-;;
거기에다가 장모에 백수 처남...-_-;;
그와중에 부딛치는 많은 문제들... 하지만 대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들려오는 희망.. 사랑이 느껴진다...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너무 힘들게 사는 그들에 모습에서 사랑은 느끼지만.. 저렇게까지 힘들게 사는게 뭐야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알프스 된장아저씨이야기는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매력에 푹빠져서 서울대에 다니던 부인과 결혼을 해서 한국에서 기와집을 짓고 10년이상을 살다가 고국인 스위스로 넘어가서 살고 있지만 한국을 잊지 못하는 칼씨의 이야기...
이집도 대가족이다. 네명의 자식과 세명을 입양했으니.. 위의 피지가족에 맘먹는 가족이다. 하지만 이집은 좀 잘사는 스위시사람에 학력도 높고, 돈도 좀 버는 집의 이야기이다. 자식들은 어렸을때 한국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일년에 한두번씩은 한국에 보내서 살게하고, 공부하게하고, 모두 한국말도 유창하고, 요즘은 한국과 연계해서 사업도 하고 있다.

피지아빠는 자식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한번이나 보여줄수 있을까라고 고민은 하지만,
스위스아빠는 자식들에게 한국에 가서 무엇을 배우게 할것인가를 고민한다.
거기다가 피지아빠는 하루하루 먹여살리기가 어려워서 그다지 자식과의 대화도 없는듯하지만, 스위스아빠는 남은 시간에 자식교육에 열중하고, 많은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을 갖는다.

다큐에서는 대가족인 양쪽집이 다 화목하고 사랑이 넘친다고 하지만.. 누구나 이 두개의 다큐를 비교해서 보게되면 스위스집안의 KO승이다.

삶에서 돈이라는것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것은 아니지만 돈이라는것이 없을때 얼마나 비참한지는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피지(Fiji),
 저는 수바(Suva)에 살고 있는 시실리아 올리바(15)입니다.

 저희 아빠는 한국인 김지선(54),
 엄마는 이곳 피지 출신인 엘리나(34),
 제 밑으로 여동생 에스더(11), 데보라(10), 모세스(9),그리고

 귀염둥이 막내 지선(5)이가 있답니다.

 하지만 아빠가 보석처럼 아끼는 우리 5남매 중에서
 아빠를 닮은 건 데보라와 모세스 뿐이에요.
 저는 미국 국적의 백인 아빠가 있고,
 에스더와 지선이는 각각 인도와 피지 원주민 핏줄이랍니다.

 하지만 아빠는 우리를 친자식으로 생각하고 아껴주세요.
 고아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까지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래요.

 뇌졸중으로 고생하는 외할머니와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외삼촌까지 집에 오게 되면서

 아빠는 10여명의 대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원양 어선 일을 그만두고 나이트클럽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를 키우기 위해 끼니도 거르고
 새벽 늦게까지 일하는 우리 아빠.
 하지만 아빠 얼굴엔 늘 행복한 미소가 흐르세요.

 어렵고 힘들지만, 비록 평범하지 않은 가정사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우리 가족,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아빠를 키운 건 외로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김지선(54) 씨.

6살 무렵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

무심코 서울행 기차를 탄 그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다.

자라면서 고아원, 소년원, 앵벌이 일까지 전전하면서

갖은 고생을 해야 했던 지선 씨.

이후 영화 스텝, 공사장 인부일 등을 거쳐

원양어선을 타게 되었지만

어선 주인은 밀린 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

지선 씨를 이곳 피지에 버리고 떠났다.

그런 그가 부초처럼 떠돌던 생활을 정리하고

피지에 정착해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것은 

바로 지금의 아내 엘리나(34)를 만나고 나서였다.


■ 드디어 나의 가족이 생겼다!

이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던 엘리나,

그럼에도 수줍은 그녀의 모습에 반한 지선 씨는 결혼을 결심했다.

결국 미국인, 인도인, 한국인, 파키스탄이 모인

다국적 혈통을 가진 아이들의 가장이 된 지선 씨.

친자식이 아닌 아이들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막내아들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줄 만큼 사랑이 각별하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몸이 아픈 장모님과

스물여섯 살 철부지 처남까지 부양해야 하는 상황.

게다가 스무 살 차이의 아내 엘리나는 아직까지

남편의 어려움도 모른 채 멋 부리기에 열중하는 철없는 아내다.

아이 다섯에 처갓집 식구들, 그리고 철없는 큰딸인 아내까지..

10여명의 대식구를 이끌어야 하는 빠듯한 살림.

그가 이렇게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평생 처음으로 그에게도 ‘가족’이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힘들고 고달파도 행복한 아빠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원양어선 일을 접고

50의 나이에 나이트클럽 매니저 일을 시작한 지선 씨.

영어에 서툴러 장부관리며 재고 관리에 애를 먹고

나이트 기기 수선공에서 직원들 운전사역할까지 담당해야 한다.

저녁 늦게부터 새벽까지, 밤을 새워 일하며

나이트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는 지선 씨.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비록 친딸은 아니지만 아빠의 서툰 영어를

눈빛으로 이해하며 위로하는 딸 시실리아와 에스더,

퇴근 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맞이하는 지선이가 있기에

김지선 씨는 힘든 줄도 고단한 줄도 모른다.

다섯 명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희망을 찾는

김지선 씨의 삶 속엔 어떤 눈물과 기쁨이 숨어 있을까. 



방송 일시: 2005년 10월 3일(월) ~ 10월 9일(금)

<기획의도>


카우벨 소리가 푸른 초원에서 쩔렁거리는 머나먼 이국, 스위스.

그곳에서 치즈 대신 빵 위에 된장을 얹어먹는 남자가 있다!!!

그의 퓨전 식단 만큼, 자신에겐 스위스와

한국의 정신적인 피가 반반씩

흐른다고 믿는 칼 뮬러(54) 씨.

그런가 하면 9명이나 되는 그의 가족들은 스위스 현지에서

모두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칼 뮬러 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취리히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그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랑도 얻어, 고정숙(45) 씨를 아내로 맞았다. 

스위스 푸른 초원에서 한국의 청량한 가을 하늘을 그리워하고

알프스 통나무집에서 한옥을 꿈꾸며 사는

알프스 된장 아저씨의 아주 특별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스위스에도 한류 열풍이 일고 있다?!!


한국에서의 15년 간 생활이 천국이었다고 말하는 칼 뮬러(54) 씨. 취리히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던 그는 한국인 친구로부터 알게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첫발을 디뎠다. 그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다정한 사람들에게 매료되어 대가족 제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런가 하면, 칼 뮬러 씨는 한국을 알기 위해 자전거로 국토 횡단을 하기도 했다. 그런 칼 뮬러 씨는 한국에서 사랑하는 아내 고정숙(45) 씨를 만나 가정을 꾸려 살다가 사업 관계로 스위스로 떠났다. 그러나 스위스에서도 한국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스위스에서 ‘코리아 뮬러’로 통하는 칼 뮬러 씨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바로 된장 찌개!! 어머니의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칼 뮬러 씨의 철학이 담긴 노력의 결과다. 게다가 큰 아들 칼리는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땄고, 축구 선수인 딸 크리스타는 한국에 축구 연수를 받으러 오기도 했다. 크리스타는 박주영 선수의 열렬한 팬이다. 그런가 하면, 막내 딸 에스더는 한국의 천사원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하고 가기도 했다는데!

        

#2. 칼 뮬러 씨만의 특별한 퓨전 교육법


학교에 가고 나서야 스위스 말을 배웠다는 아이들. 칼 뮬러 씨는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도록 가르쳤다. 스위스 말을 썼을 때는 눈물이 나도록 혼을 냈다는 칼 뮬러 씨. 말은 곧 문화의 통로라는 생각에서 나온 그의 교육법이다. 그의 철학은 예절 교육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의 가족은 술을 마실 때는 고개를 돌려야 하고, 어른이 식사를 마치지 않았을 때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칼 뮬러 씨는 한국의 어느 아버지보다 엄한 반면에, 아이들의 의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기도 한다.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사업을 시작한 큰 아들 칼리와 중학교를 그만 두고 형과 함께 사업을 하는 둘째 아들 마띠아스. 사업가인 칼 뮬러 씨는 이들의 뜻을 존중해 학업을 그만두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봐 준다.


#3. 작은 지구촌, 글로벌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칼 뮬러 씨의 가족은 자신이 낳은 네 명의 아이들과 세 명의 입양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인종이 모여 있기도 하다! 백인과 흑인, 동양인과 혼혈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백인인 칼 뮬러 씨와 한국인 아내 고정숙 씨. 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이들. 칼리, 마띠아스, 크리스타, 에스더. 형편이 어려운 손위처남의 아이들을 입양한 주리와 미주, 거기에 아프리카 앙골라 정치 망명 고아인 페피또까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국에 왔던 칼 뮬러 씨는 한국의 대가족 제도에 사랑이 있다고 믿었다. 넓은 의미의 가정에서 사랑과 행복을 찾은 칼 뮬러 씨 가족, 그곳에는 지구촌 어느 가족보다 웃음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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