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와 마술사 (Travellers & Magic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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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에 한 땡중이 미국병에 걸려서 미국에 가려고 거짓말을 하고 나왔다가 버스를 놓치고, 차를 얻어타고 가면서 한 승려에게 이야기를 듣고, 한 나그네의 딸에게 관심을 가지며 마음이 흔들린다.
부탄에서는 나름대로 공무원이 였던 그가 미국에 가면 반나절이면 한달월급을 번다고 신나하던 양아치같던 그...
그런 그에게 겨우 사과나 따러 미국에 가냐고 한소리 하던 노친네...
곰곰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가 진정원하는것이 무엇인가.. 돈인가.. 제대로 된 삶인가... 나쁜짓을 저지르더라도 나만 잘산면 되는것인지를...
 

개봉  2006년 04월 28일 
감독  키엔츠 노부 
출연  티세왕 댄덥 , 소남 라모 
장르  드라마 , 어드벤쳐 
제작국가  부탄
제작년도  2002년

제발 미국으로 가게 해주소서!

부탄의 한 시골마을. 젊고 유능한 공무원 돈덥은 마을 사람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남 부럽지 않게 살아간다. 하지만 잘 나가는 듯 보이는 그에게도 한 가지 근심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다. 자신의 월급이 미국인의 반나절 급여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에 격분(?), 반짝이는 미래를 위해 머나먼 미국으로 미치도록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루하루 숨죽여 지내던 어느 날..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할 수 있게 된 것! 아끼던 테이프며 포스터, 죄다 남겨두고 조촐히 짐을 싸서 도시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이 양반아, 사과를 따려고 꿈나라로 가는가?

인적 드문 마을을 벗어나려니 여의치 않은 건 역시나 교통수단. 돈덥은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며 히치하이킹을 시도하지만 누구도 선뜻 차를 태워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사과장수와 스님. 길 위에서의 지루한 기다림을 달래고자 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눈다. ‘미국으로 가면 사과를 따든 허드렛일을 하든 상관없소.’ 돈덥의 맹목적인 미국행 결심에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는데..

아름다운 소녀와 아메리칸 드림.. 최선의 선택은?

우연히 차에 올라탄 노인과 그의 19살 난 딸. 돈덥은 아름다운 소녀에게 한 눈에 반한다. 마을에서 떠나온 길이 멀어질수록 소녀를 향한 마음도 서서히 무르익어만 가고, 어느덧 미국으로 떠나려 했던 굳건한 의지가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돈덥은 무사히 미국으로 떠날 수 있을까?


사랑과 꿈의 여행에 대한 매력적인 이야기! - 레슬리 펠퍼린, 인디와이어 -
마술과 현실에 대한 우화는 삶의 정신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보여줄 것이다. - 리 마셜, 스크린 인터내셔널 -

부탄에서 날아든 두 번째 감동
소박한 자연미가 살아 숨쉬는 부탄..
축구에 열광하는 스님들의 순박함이 길 위의 사람들에게서 재현된다..!

승려 출신 감독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키엔체 노르부.
그가 <컵> 이후 7년 만에 신작 <나그네와 마술사>를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아메리칸 드림을 가슴 속에 품고 머나먼 길을 떠나는 돈덥..
우연히 듣게 된 마술사의 설화를 통해 진정한 샹그릴라의 의미를 깨달아가는데..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진정 원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나그네와 마술사>를 통해 소유의 진정한 가치와 참뜻을 되새겨보길 바란다.



제작환경이 열악한 부탄에서 촬영
전세계 108명의 스탭들이 이 한편의 영화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2002년 9월 29일, 순수한 아름다움이 살아 숨쉬는 히말라야 왕국 부탄에서 <나그네와 마술사>의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키엔체 노르부 감독의 고향 부탄에서 처음 제작되는 영화를 위해 모여든 스탭과 배우의 숫자는 무려 108명. 오스트리아, 독일, 인도, 캐나다, 미국 등 국적도 제각각이었다.

부탄에는 영화 제작기반이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다. 아예 영화산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컵>을 연출한 키엔체 노르부 감독은 여러 나라의 노련한 스텝들을 비롯, 부탄의 신진 영화 제작자 등과 함께 그들의 경험과 부탄 영화의 미래에 대한 영감을 공유하며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부탄에서의 촬영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런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장비를 해외에서 조달해야 했으며, 필름 현상과 편집 등의 후반 작업도 해외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촬영기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나그네와 마술사>는 Aaton XTR, Ataton A-Minima 슈퍼 16mm 카메라 코닥 컬러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TV 영화 시간대에 부탄에서도 관람 가능하게끔 방콕에서 음향작업을 진행했고, 완전한 디지털화 작업은 오스트리아에서 마무리됐다.


새로운 언어 죵카(Dzongkha)를 배우느라 구슬땀 흘린 배우, 스탭진
<컵>에 이어 다시 한번 비전문 배우들 대거 캐스팅
스탭, 배우 기용에 전통 예언방식 '모(Mo)' 도입하기도!!

<나그네와 마술사>의 촬영이 시작될 무렵, 부탄의 왕은 지역통합의 일환으로 다양한 지역방언 중 국민의 1/4이상이 사용하는 죵카(Dzongkha)를 국어로 공식 채택했다. 따라서 배우들에게는 새로운 언어구사가 요구되었는데, 이를 위해 모두 정해진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참여한 해외 전문 스탭들과 부탄의 현지 스탭, 배우들의 노력으로 촬영장은 늘 행복한 분위기였다는 후문이다.

키엔체 노르부 감독의 전작 <컵>과 마찬가지로 영화에는 전문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는다. <컵>에서는 재정기관 주요인물, 왕 호위병 대령, 수도사, 정부정책 선임고문, 지역 방송인, 학교 교장 및 학생들, 농부 및 개인 사업자, 명상가 같은 타 분야에서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된 바 있다. <나그네와 마술사>에는 방송국 PD, 중학생, 부탄학교의 조사원 등이 캐스팅 되었으며 일반인 대상의 오디션을 실시 하기도 했다.

부탄의 문화를 고수하기 위해 애쓴 흔적도 역력하다. 특히 옛 라마승이 고안했다는 전통 예언방식 '모(Mo)'가 스탭과 배우 결정에 한 몫 했다. 이는 부탄의 정통 생활 방식을 지켜가기 위한 키엔체 노르부 감독의 의지다. 노르부 감독은 불교정신을 통해 해로운 것을 없애고자 '푸자스(pujas)' 라고 알려진 특별한 종교의식을 제작전반에 걸쳐 행하기도 했다.


“내가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그들은 내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키엔체 노르부 감독

부탄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장양 키엔체 왕포의 화신으로 더 잘 알려진 키엔체 노르부 감독. 그는 1961년 부탄 동부 외딴 곳에서 현대불교의 대가 틴레이 노르부 린포체의 아들로 태어났다.

노르부 감독이 처음 영화를 접한 건 그의 나이 19살 때. 인도의 샤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당시 TV를 통해 본 발리우드 영화가 그로 하여금 영화와 인연을 맺게 만든 작은 시작이었다. 불교수행과 영화공부를 병행했던 그는 런던 스쿨 재학시절에 만난 친구 제레미 토마스의 도움으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리틀 부다>의 조연출을 맡고 있던 토마스는 그를 베르톨루치 감독에게 소개했고, 노르부 감독은 곧 <리틀 부다>의 고문으로 기용됐다. 영화 촬영 기간 동안 그는 베르톨루치 감독을 심도 있게 주시하며 감독으로서 필요한 것들을 익혔다. 이러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훗날 베르톨루치 감독에 대해 '나의 영화 교사나 다름없다'고 말한 바 있다.

베르톨루치 감독의 정신적, 물질적 도움으로 노르부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영화 <컵 (The Cup)>을 완성할 수 있었다. <컵>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축구 결승전에 사로 잡혀있던 수도승의 반자서전적 이야기로, 지금까지 성인(聖人)으로서만 인식되어왔던 티벳승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담아내 화제가 됐다. <컵>의 성공적인 흥행은 노르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자, 부탄(Bhutan)에서 최초로 촬영된 야심작 <나그네와 마술사>를 제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옛 조상들의 예언방식 '모(Mo)'에 의존해 촬영 스케줄과 캐스팅, 촬영 방식 등을 결정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 노르부 감독은 부탄과 부탄의 전통을 사랑한다. 이는 영화의 제작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전문 인력이 모여들었지만, 주요 스탭을 제외한 대부분을 부탄인으로 고용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키엔체 노르부 감독은 영화를 만들지 않을 때만큼은 본연의 생활로 돌아가 불교사상을 아시아, 미 대륙,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전파하는 데에 힘쓴다. 세계 각지에 수련센터와 수련학교를 세우는 데에 앞장서기도 하며, 수많은 시간을 명상 수련원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불교왕국 부탄을 보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속 이상향으로 그 이미지가 각인된 나라 부탄. 실제로 부탄인들은 지리적 특성과 유유한 정책으로 말미암아 순수함을 잃지 않고 평온히 살아갈 수 있었다. 시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고나 할까. 세계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기로 1, 2위를 다투는 두 나라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하고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구수가 고작 70만 명에 불과하다. 국토 면적 역시 스위스의 그것과 비슷할 정도니, 두 고래 사이의 새우쯤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래서 부탄은 세계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런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치 있는 히말라야를 끼고 있는 부탄은 <나그네와 마술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특유의 아름답고 감성적인 생활방식들이 인상적인 나라다. 왕권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법에 따라 전통의상을 입어야 하며, GNP 보다는 GNH(Gross National Happiness) 우선으로 한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까지는 화폐, 도로, 전기, 전화, 학교, 병원, 우편도 없었으며 외부와의 교류도 전무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세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물결에 무심한 채 발과 말을 이용해 어디든 돌아다녔으며, 물물교환을 통해 생계를 꾸렸다.

1974년부터 바깥세상에 문을 열게 되면서 부탄은 관광객들에게 매혹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 경이로운 풍경과 건축물, 친절하고 매력적인 사람들, 독특하고 순수한 문화는 부탄 최고의 매력. 하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 풍부한 자연 자원의 가능성에도 불구,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오명을 떠안은 채 발전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기피해왔다. 옛 문화와 자원, 그리고 불교식 생활 양식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는 부탄은, 과거와 미래에 양 발을 걸친 채 침착하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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