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자서전

 



헬렌 켈러의 자서전...
과연 이 책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사람이 쓴 책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느낌이 든다.
어려움을 이겨내기까지의 그의 노력, 고통... 그리고 그를 이렇게까지 만들어준 주위의 사람들...
대단하다... 그리고 완벽한 암흑의 세계에서 아주 단순한 지능만을 가지고 살다가, 이 세상을 하나씩 느끼고, 알아가며 느끼는 그녀의 세심한 감각, 느낌의 섬세함에 감탄에 마지않는다...
그리고 처음부분에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을 보면서 과연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기능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곰곰하게 생각해보며 감사해볼수 있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었다.

헬렌 켈러의 아름다운 투쟁 - 감추기
헬렌 켈러의 아름다운 투쟁

[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 인간의 존엄1 - 헬렌 켈러]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장애를 딛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인간적으로 증명해내다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한 아기가 심하게 앓고, 결국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 보니까 모든 게 깜깜하고, 조용하고…. 그래서 밤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왜 낮이 이렇게 더디게 오는 거지?’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낮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아프기 직전까지 막 말을 배우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껴가던 아기에게 갑자기 세상이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터미네이터’와 헬렌 켈러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보면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지닌 로봇들이 잇따라 등장해 인간을 주눅 들게 한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로 표징되는 가공할 완력과 초능력을 자랑하는 첫 번째 터미네이터로부터, 형상기억합금으로 재탄생한 더 빠르고 강력한 두 번째 터미네이터, 그리고 어떤 기계라도 만능으로 다루고 지배하는 여성형 로봇인 세 번째 터미네이터 등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이 인조인간 앞에서 우리 인간은 자꾸 초라해지고 왜소해지기만 한다.

이런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인간은 그 존엄성을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줄기 배아세포의 복제라는 첨단 과학에 따라 인간의 장기가 대량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조차 복제될 수 있는 시대가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인간복제 가능의 시대에서 인간은 필요하면 기계의 부속품처럼 자신의 신체 일부나 거의 전부를 갈아끼우는 게 가능한 존재로 재규정된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귀 하나, 눈 하나의 소중함은 간단히 사라진다. 외형적으로 인간은 그런 복제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부속품을 갈아끼움으로써 마치 신체 이상의 한계라든가 수명 제한의 한계를 간단히 극복하는 것처럼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착시현상이 아닐까? 실제로 이런 식으로 인간이 재규정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닐까?

헬렌 켈러, 태어나서 19개월 만에 뇌척수막염(또는 성홍열, 수막염)으로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을 모두 한꺼번에 상실하는 3중 장애의 고난에 빠졌던 인간, 이렇게 세상이 가없이 어린 자기를 갑자기 내팽개쳐버리는 절대 절망 속에서 처절한 노력으로 아주 힘들고도 느리게, 그러나 마침내 성공적으로 그 닫혀버린 문을 열어낸 인간, 그렇게 함으로써 그 어떤 비장애인도 해내지 못한 인간의 존엄을 증명해낸 인간…. 개인적으로 지난 14개월 동안 역사 인물에 대해 나름대로 읽고 생각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인간적으로 증명해낸 인물이 바로 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특히 그가 그런 3중 장애를 딛고 일어선 뒤 쓰고 말하고 일함으로써 쉼없이 다른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을 되새기면 그의 독특한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대단히 존경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헬렌 켈러의 업적이랄까, 그의 활동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 육체적 투쟁: 자신에게 닥친 3중 장애의 극복

(2) 사회적 투쟁1: 장애인에 대한 당시의 편견과 오해와 맞섬

(3) 사회적 투쟁2: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도 맞섬

(4) 사회적 투쟁3: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치활동 모색과 참여

그는 어떻게 세상과 소통했는가

1880년부터 1968년까지 헬렌 켈러가 88년 생애를 다 바친 이 네 가지 투쟁은 결코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헬렌이 맞닥뜨려야 했던 세상은 오늘날과 달리 아주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시각-청각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20세기 이전에 시각과 청각이 손상돼 언어장애까지 갖게 된 사람이 살아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대다수가 유아기 때 혈육에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런 일은 지구 곳곳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눈이 먼데다 귀까지 들리지 않은 사람은 괴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장성하기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곤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눈이 먼 아이들을 산꼭대기로 끌고 가 굶겨 죽이거나 산짐승들에게 잡아먹히게 내버려두었다. 다른 고대 사회에서도 눈 먼 아이들은 노예나 창녀로 파는 일이 흔했다. 동양에서는 으레 창녀가 됐으며,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에게 버림 받거나 구걸하며 연명해야 했다. 시각장애 하나만으로도 이런 악행의 피해를 받을 지경이었으니, 거기다 귀까지 들리지 않는 2중 장애인들은, 다시 거기서 말까지 하지 못하는 3중 장애인들은 어떠했을지는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 88년간 헬렌 켈러는 자신에게 닥친 3중의 장애와 모든 편견에 맞서 싸웠다.사회활동을 하는 헬렌 켈러의 모습.

이 암흑의 시대에 인간은 이런 표현을 마구 써댔다.

‘원죄의 대가’ ‘어둠의 상징’…. 유대인은 <탈무드>에서 ‘살아 있는 시체’라는 표현까지 썼다. 거기서 더 나아가 ‘산 채로 묻힌 시체’를 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조차 흔했다. 미국에서도 그런 장애가 마치 성병과 관련이 있다는 식의 무지와 오해 때문에 헬렌 켈러가 기고하는 것을 기피하는 여성잡지도 있었다.

헬렌의 장애극복 과정은 또 어떠한가? 전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이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선생님인 애니 설리번과 함께 기울인 노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1) 촉각만으로 만나는 세상: 오로지 촉각만으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촉각이 곧 눈이요, 귀요, 입인 것이다.

(2) 글자도 모르는 단계: 글자를 손바닥에 써준다. ‘인형’ ‘과자’ ‘엄마’…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 하다가 나중에 알고 글자를 스스로 흉내내서 쓸 수 있게 된다.

(3) 머리 쓰는 법 가르치기: 나무 구슬이 들어 있는 상자와 유리 구슬이 들어 있는 상자를 가져다가 실에 나무 구슬 2개를 꿰고 다음에 유리 구슬 1개를 꿰어서 헬렌의 손에 쥐어준다. 헬렌은 처음엔 나무 구슬만 꿴다. 그걸 다 빼내고 다시 제대로 꿴 다음 만져보게 하고 다시 하게 한다. 그 다음에는 헬렌이 정확하게 한다. 그러나 매듭을 묶지 않으니 다 빠져나가버린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매듭을 묶었다.

(4) 포크 사용법 가르치기: 손으로만 먹고 포크를 쥐어주면 내던지는 것을 계속 다시 쥐어주는 식으로 해서 성공한다. 음식은 포크로 먹는 것이다!

(5) 단어에 대한 이해와 추가 학습 열망: 사물과 단어의 연관성을 깨닫는다. 펌프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느끼게 하고, 그것이 우유와 다른 물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 장면이 영화 <기적은 사랑과 함께>에 감동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때부터 단어를 본격적으로 배워나간다.

(6) 점자 공부: 손으로 써서 알게 된 알파벳과 단어를 점자로 바꿔 인식하게 한다. 그 결과 올바른 문장을 쓸 수 있고, 자기가 쓴 글을 고칠 수 있게 됐다.


△ 어린 시절의 헬렌 켈러(왼쪽).LP음반의 노랫소리를 손가락의 촉각으로 느끼는 모습(오른쪽).

애니 설리번의 인내와 노력이여

(7) 수화 알파벳 익히기: 손으로 알파벳을 표현하는 수화 알파벳을 익히게 한다. 헬렌이 스스로 알파벳을 수화로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한편, 헬렌이 다른 사람의 손을 만져서 그 알파벳을 알아내도록 가르친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화 알파벳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촉각만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단계다.

(8) 발음교육: 이것이 가장 어렵고도 가장 극적인 대목이다. 손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만져서 입술의 모양과 움직임, 혀의 위치, 목젖의 상태와 움직임 등을 느끼도록 한 뒤 그걸 그대로 흉내내서 소리를 내도록 한다. 보거나 듣지도 못하고 오직 촉각만으로 발성기관의 모든 것을 느껴서 그것을 흉내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소리를 재현하는 처절한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재현한 소리는 보통 사람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아가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한 단어를 발음하는 것을 배우는 데 하루가 걸리기도 했다. 절망해서 울음을 터뜨린 적도 많다. 어쨌든 발음은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다.


△ 헬렌 켈러의 생이를 그린 영화<운명을 이긴 사람>에 직접 출연한 헬렌 켈러(손든 사람).

(9) 점자로 독서: 지식의 극대화·다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헬렌 켈러는 1880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남군 퇴역 대위이자 면화농장주로서 주간지를 발행하는 지방 언론인이기도 했다. 생후 19개월 만에 병을 앓고 살아났으나 3중 장애에 빠진다. 그 뒤 거의 의사소통이 차단된 상태에서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생활을 한다. 접시를 깨고, 등불을 부수고, 다른 사람이 먹고 있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손으로 휘젓고, 할머니를 꼬집어 내쫓고, 광문의 열쇠를 잠가버리고….

사회주의에 경도… 나치즘 반대 활동 벌여

그러다가 전화기의 발명자이자 장애인 교육의 선구자이기도 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권고로 장애인 특수교사를 가정교사로 두게 된다. 헬렌 켈러는 이 특수교사인 애니 설리번의 인내와 노력, 전문성 있는 교육으로 세상과 재소통하는 데 마침내 성공한다. 그 결과 케임브리지 여학교를 거쳐 하버드대학의 여자부 래드클리프대학을 졸업한다. 그 뒤 자신처럼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활동에 나서 온 생애를 바친다.

당시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힌 세상 사람들을 향해 장애인 교육시설과 교육방법의 개선에 지원해줄 것을 호소한다. 이를 위해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국가의 순회 강연에 나서고 다양한 집필 활동을 벌였다. 순회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위해 유럽과 동아시아 등 세계 39개국을 방문했다. 2차 세계대전 때도 세계를 순회하며 전쟁으로 시각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 위문하고 지원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 활동의 연장선에서 ‘헬렌 켈러 국제상’이 생겨났다. 건강이 나빠진 뒤 말년에는 명상과 기도 생활을 하다가 1968년 숨진다. 정치적으로 헬렌 켈러는 사회주의에 깊이 경도됐으며, 전쟁과 나치즘을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


“좋은 것은 가슴으로 느껴질 뿐”


△ 헬렌 켈러의 기념우표.그는 인류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겼다.

“인생에 과감한 도전이 없다면 그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에서 안전에 집착하는 것은 미신에 집착하는 것과 다름없다. 안전이라는 것은 자연상태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대신 다른 쪽 문 하나가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닫힌 문만 바라보고 우리를 위해 다른 쪽에 새롭게 열린 문은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세상에서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다만 가슴으로 느껴질 뿐이다.”

“친구와 어둠 속을 함께 가는 것이 혼자 밝음 속을 가는 것보다 낫다.”

“나는 위대하고 고상한 일을 완수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의무는 작은 일을 바로 그렇게 위대하고 고상한 일인 것처럼 완수해내는 것이다.”

“우리가 한번이라도 즐거움을 느껴본 것이라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우리가 깊이 사랑한 모든 것은 우리의 일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우리 삶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다른 사람의 삶에도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 나름대로 경탄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심지어 어둠과 침묵조차도 그렇다. 그 어떤 상황에 놓일지라도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기운을 내시게나. 오늘의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내일 찾아올 성공을 생각하시게. 어려운 과업을 세웠군. 하지만 참고 견디면 성공할 거야. 난관을 극복하노라면 기쁨이 찾아오나니.”

“지식은 사랑이며 빛이며 비전이다.”

“비관주의자치고 행성의 비밀을 알아낸 사람이 있는가? 인간정신을 위한 신대륙의 항로를 개척한 사람이 있는가?”

“볼 수 있으면서도 비전이 없다면? 끔찍한 일이다.”

“과학은 거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나쁜 것-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치료하는 방법은 찾아낼 수 없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은 내게 깊은 위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세상에 즐거움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 용기인지 무엇이 인내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도서 정보>제   목 :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자서전
저   자 : 헬렌 켈러/이창식,박에스더 공역
출판사 : 산해
출판일 : 2005년 5월
책정보 : ISBN : 8989763517 | 페이지 : 256 | 410g
구매일 :
일   독 : 2006/12/7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헬렌 켈러가 대학 2학년 때 쓰기 시작한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와 50대의 헬렌이 눈이 뜨여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기적적인 상황을 가정한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은 국내에 처음으로 전문이 소개되는 것이다. 평생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것들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를 찾아낸다. 단지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글이다.

어려서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청력을 잃은 뒤 가정교사 앤 설리번을 만나 장애를 극복하고, 평생 장애인을 위한 사업에 헌신한 헬렌의 삶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영화나 요약본, 아동용 동화를 통해서 그 내용을 접했을 뿐이다. 헬렌이 직접 쓴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에는 사라진 감각 대신 촉각과 후각, 상상력으로 세상을 살아간 그녀의 삶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번역자들이 헬렌이 쓴 한 문장, 한 단어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노력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는 고통스런 운명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간 그녀의 인간과 자연, 세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 : 헬렌 켈러 Helen Adams Keller
1880년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서 출생.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일곱 살 때 가정교사 앤 설리번을 만나,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의 장애를 딛고 하버드 부속 래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전세계의 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에 평생을 바치다가 1968년 8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생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1937년). 그녀는 풍부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다.

오늘, 다시 헬렌 켈러의 이야기를 읽는 이유
오늘날 헬렌 켈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마크 트웨인은 헬렌 켈러가 천 년 후에도 사람들 기억에 살아 있으리라 예언했다. 우리는 그녀를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천형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기억한다. 또한, 그녀는 “시력이 없는 사람보다 더 가엾은 사람은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와 같은 위대한 한마디와 그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실천을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때문에 오늘도 세계의 많은 이들은 그녀의 육성 속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한편, 그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와 용기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20세기 최고의 에세이 - “내가 만일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2001년 미국의 무역센터 건물이 붕괴된 9?11테러의 와중에 그 건너편에 자리한 국제헬렌켈러기념사업회 건물도 무너졌다.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모두 사라진 그 폐허 속에서 헬렌켈러기념사업회의 존 팔머 회장은 헬렌 켈러의 말을 인용하여 충격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헬렌 켈러가 1933년, 미국의 대공황기에 발표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50대의 헬렌 켈러는 이 글 속에서, 자신의 눈이 뜨여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기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그 사흘 동안 어떤 일들로 시야를 채울 것인가를 들뜬 어조로 궁리하고 있다.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한 그녀가 오히려 사지 멀쩡한 우리들은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인 아름답고도 가치 있는 일들을 잘도 찾아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저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인지, 그리고 그 축복을 우리가 얼마나 놓치며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글을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수필?로 꼽았다.
국내에 에세이 전문을 번역, 소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꼼꼼한 번역으로 만나는 스물세 살 헬렌의 아름다운 자서전
일반적으로 알려진 헬렌 켈러의 자서전 는 놀랍게도 그녀가 대학 2학년 때 쓰기 시작한 글이다. 잡지에 연재된 헬렌의 진솔한 글은 당시 독자들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단행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바로 그 책이 오늘날 전기문학의 고전으로까지 인정받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나친 유명세 탓인지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이기도 하다. 영화나 요약본을 통해 줄거리를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만 그녀가 써내려간 글을 온전히 읽어본 이는 많지 않다. 물론 국내에 제대로 나온 번역본이 없다는 사실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동용 전기문은 발췌 압축한 것에 지나지 않고, 일반인 대상으로 나온 책 또한 완역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사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줄거리만 파악하고 끝낼 책이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읽어야 한다. 시력과 청력을 잃었기에 더더욱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게 된 헬렌 켈러는 사람, 동물, 사물, 풍경, 사건,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꼼꼼하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세밀화를 보는 듯한 그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 보면 사라진 감각 대신 촉각과 후각과 상상력과 영감을 총동원하여 세상을 알아갔던 그녀의 어린 시절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이런 글을 압축본으로 접하고 넘겨버린다는 것은 독자에게 큰 손해일 것이다.

천형을 지고 태어났으나 삶을 사랑했던 여인
50대의 헬렌이 남긴 에세이와 20대의 헬렌이 쓴 자서전을 한데 묶어 출간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옮긴이들은 무엇보다도 원문의 단 한 문장, 단 한 단어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헬렌 켈러의 육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녀의 진솔한 삶과 꿈을 독자가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헬렌 켈러의 글을 곰곰이 씹어 읽을 때 더욱 놀라운 것은 저주받았다 해도 좋을 운명에 시달린 그녀가 누구보다 밝고 적극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목가적인 전원풍경이나 아름다운 예술품뿐만 아니라 혼잡한 대도시의 마천루와 바쁜 군상들 역시 그녀는 행복하게 바라본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헬렌은 불행하고 비참한 광경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사실 헬렌 켈러는 기적의 소녀이자 장애인의 대모일 뿐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녀가 직접 쓴 글을 읽다 보면 헬렌 켈러의 모든 언행은 인간과 자연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책속으로>
내가 만일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1933년)
내가 살아온 이야기(1903년)

옮긴이의 말 손으로 보고 손으로 들은 풍요로운 세상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아는 사람은 귀머거리뿐입니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채로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는 소경밖에 모릅니다. 특히 후천적인 이유로 청각이나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더욱 감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하지만 시각이나 청각을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은 그 능력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누구나 막 성년이 되었을 즈음 며칠 동안만이라도 소경이나 귀머거리가 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어둠은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깨워줄 것이며, 정적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려줄 것입니다.
본문 21쪽

얼마 전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마침 숲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별거 없어.?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앞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촉감만으로도 흥미로운 일들을 수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오묘하게 균형을 이룬 나뭇잎의 생김새를 손끝으로 느끼고,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껍질과 소나무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껍질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집니다. 봄이 오면 자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첫 신호인 어린 새순을 찾아 나뭇가지를 살며시 쓰다듬어봅니다. ……그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눈으로 직접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 p.22

내 눈은 언제나 행복과 불행 모두에 주목합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더 깊이 탐구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언제나 행복과 불행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광경들도 있지만, 불행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광경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고 비참한 광경에 눈을 감고 외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도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눈감는 것은 마음과 정신에 눈감는 것이니까요. --- p.37

?헬렌,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구름을 만질 수는 없단다. 그러나 비를 만질 수는 있지. 한낮의 무더위에 시달려 목마른 대지와 꽃들이 이 단비를 받아 마시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도 잘 알잖니? 사랑도 꼭 그렇단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모든 것 위에 부어지는 그 달콤함만은 느낄 수 있지. 사랑이 없다면 행복하지도 뭘 하고 싶지도 않을 거야.? 이 아름다운 진리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 느껴졌다. --- p.85

내가 나이애가라 폭포가 준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감동받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긴다. 그들은 묻곤 한다. ?당신은 지금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음악 운운하는데 대체 그 모두가 당신에게 무슨 의미란 말입니까? 솔직히 일렁이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으르렁거리는 포효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대체 당신이 무엇을 알 수 있다는 건지.? 보고 또 들으면 다 안 것인가, 다 설명한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고 또 선함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이나 나이애가라, 이 대자연의 그러함을 설명하기 어려운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닐까.--- p.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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