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홍교수의 아름다운 남자 아름다운 성공, 재활원의 소아마비소년 미국라이트주립대 교수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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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   목 : 아름다운 남자 아름다운 성공 : 재활원의 소아마비소년 미국라이트주립대 교수 되기까지
저   자 : 차인홍
출판사 : 토기장이
출판일 : 2003년 12월

KBS 글로벌 성공시대 - 휠체어 탄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차인홍 교수



장애자인 주인공의 살아온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고 겸손하게 쓴 책.
어릴때부터 아주 고생이 많았던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세상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사람도 있구나...
목표없이, 희망없이, 배운것없이, 돈도 없이...
꾸준하게 커가고 지금도 커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미디어 리뷰>
생후 1년여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발을 쓸 수 없었던 남자 아이. 가정형편상 아홉 살 되던 해에 재활학교에 맡겨져 외로움과 극심한 배고픔까지 경험해야 했던 소년. 그 소년이 마침내 휠체어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 오케스트라 지휘자 겸 바이올린 음악 교수가 되어 우리 곁에 왔다.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가며 오히려 가장 따뜻하고 풍성한 사랑을 가슴에 품게 된 아름다운 남자, 차인홍. 그의 아름다운 성공스토리가 그를 도왔던 이웃들의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그의 음악과 삶에 관한 뜨거운 애정을 담아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그는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9살 때 대전에 있는 성세재활학교로 들어간다. 그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수십 명의 아이들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힘들고 외로운 그곳에서 그는 그의 인생을 기적으로 만들어줄 음악을 만나게 된다. 바로 강민자 선생님의 무료 바이올린 수업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재활원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를 받아줄 중학교는 없었다. 그는 목발을 짚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휠체어도 너무 귀한 시절이라 그를 돌봐줄 사람이 늘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그에겐 바이올린 연습이 그의 삶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바이올린으로 그의 인생에 어떤 꿈을 꿔볼 수 있던 건 물론 아니었다.
마침 그때 재활원에서 일본에 있는, 장애인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태양의 집”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1년간 기술을 배우길 원했지만 단순노농만 하다가 귀국하게 된다. 역시 그의 미래는 물론 현재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음악으로 그의 인생을 몰고 가시는 하나님의 묘한 섭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강민자 선생님의 제자인 고영일 선생님의 제안으로 베데스다 현악4중주단이 창단하게 된 것. 그분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차인홍교수를 포함한 4명의 장애 청년들을 한집에서 합숙을 시켜가며 레슨을 해주셨다. 작은 집에서 함께 숙식을 해결하며 오직 연습에 연습을 통해 그들은 일본을 비롯한 여러 무대에서 연주활동을 갖기에 이른다, 그는 하루 10시간이상 바이올린 연습에 매달렸다. 연습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찬바람 몰아치는 연탄광에서 싸구려 바이올린을 붙잡고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값비싼 연주를 해낸 것이다.

20대 초반의 차인홍, 그러나 그는 현실적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다. 그러던 차에 서울의 정립회관으로 베데스다 4중주단 멤버가 동시에 옮겨왔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천사 같은 아내, 조성은의 헌신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그녀의 도움으로 베데스다 4중주단원 모두 중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패스하게 된다.
그 삭막하던 재활원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바이올린을 접하게 된 것이 첫 번째 그의 인생의 기적이라면 다시 두 번째 기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꿈에도 생각할 수 없던 유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아산재단의 장정자 이사님의 배려로 미국에서의 생활비 일체를 지원받으며 유학을 가게 된다. 그래서 오하이오주의 신시네티 음악대학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쌀(La Salle)4중주단의 사사를 받았고 곧이어 뉴욕시립대학교의 브룩클린 음악 대학에서 석사과정까지 밟게 된다.
한편 그의 아내 조성은은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결혼이 불가능해지자 핸드백 하나 달랑 들고 미국으로 가서 결혼했고 오늘날까지 그녀는 차교수의 가장 완벽한 아내이자 서포터이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차인홍 교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그녀는 가발공장부터 재봉질, 피아노레슨 등 갖가지 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다.
석사를 마치고 대전시향의 악장으로 일했지만 다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드디어 83대 1의 경쟁을 뚫고 오하이오주 라이트 주립대학의 바이올린 교수 겸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 그 인생에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는 지금까지 그의 인생 내내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살아왔기에 이제 그의 후반기 인생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환원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알래스카와 하와이뿐만 아니라 한국이든 일본이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엔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사랑의 연주를 하고 다닌다. 학기 중엔 주말을 이용해 장애인을 위한 모금 음악회 등 다양한 연주활동을 벌이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갚아 가고 있다. 또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실내악단이나 브루클린 콘서바토리 오케스트라, 부천 시향 등 많은 오케스트라와 여러 차례 협연을 할 때 마다 “노래하는 바이올린 연주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에 KBS의 다큐멘타리 <수요기획>에 그의 삶이 방영되었고 또 각종 언론에 보도되어 국내에도 널리 그 팬을 확보하고 있다. 한편 그는 휠체어스포츠에도 능해서 일본에서 열린 제 1회 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서 장애물경기, 800m달리기, 소프트볼 던지기 등에서 각각 금,은,동메달을 수상했고 1981년 제 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마라톤 부문 1등을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휠체어 농구팀에서 열심히 활약했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노력해서 성취하고 즐기며 또 베푸는 멋진 인생을 사는데 집중하기에 말이다.
그의 장애는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수많은 거친 풍파를 만나게 했지만 그것이 결코 그를 거칠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세상을 향한 그의 시선은 더욱 부드럽고 깊어졌으며, 오히려 시야는 더욱 넓어져 갔다. 그리고 그는 거친 세파를 넘길 때마다 정상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 갔다. 넘어질듯 위태로우면서도 결국은 여유 있는 항해를 진행한 사람이 바로 차인홍 교수였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통해 그는 다음처럼 고백한다.
"나는 내 생애의 어느 한 부분도 고생담으로 비쳐지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고생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랑받은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은 고생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받은 이야기이다. 한 편의 러브스토리인 것이다."
그는 이렇듯 온갖 역경을 뚫고 나오면서도 그것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다. 또한 때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 준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이를 수 있었다고 고백할 줄 아는 겸손의 사람이다. 고통 속에서 아름다움을 즐기고, 가난 속에서 마음의 부요함을 누릴 줄 아는 이가 그였다. 자칫 황폐하게 흐를 수 있는 그의 인생 여정이 결국 풍요롭고 부드럽게 진행된 것은 인생에 관한 그의 이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호의 정리>
지금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이 이루어야할 꿈도 클 것입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만나는 고통의 무게는

바로 당신이 이루어야 할 꿈의 무게니까요.

KBS 글로벌 성공시대 - 휠체어 탄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차인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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