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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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불꽃처럼 살다가 39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대단한 분...
왜 사람들이 체 게바라에게 열광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예전에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았을때는 그냥 이 사람이 체게바라구나라는 생각정도였는데, 체게바라의 일생을 돌아보니 정말 멋지고, 따뜻하고, 강직하며,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고, 똑똑한 사람인것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주의,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을 해보게도 되는데, 다른부분은 다 마음에 드는데 너무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지 않았나라는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그가 적당히 타협하면서 적당히 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면 절대 지금의 체게바라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쿠바에 피델 카스트로 처럼 안주했다고 해도 마찮가지 일것이다. 어쩌면 독재자로 몰렸을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책을 덮으면서 느끼게 된다. 다만 쿠바의 개혁을 완수하지 못하고 잠적해버리는 부분은 솔직히 좀 아쉽기도 하지만 가능하지도 않았으리라...
혁명이나 개혁을 보면 시작할때의 마음, 초심과 정권을 잡은후의 마음이 너무 달라지는 세태를 보면 역시 사람은 어쩔수 없나라는 생각도 해본다.

쿠바에서 소수의 게릴라로 정부군을 무찌르고 정권탈취에 성공한 면을 보자.
우선 민심을 잘 이용하고, 잘 해주고, 기존의 독재자에 대한 비방과 개혁에 대한 희망 등 홍보와 선동정치를 잘 펼쳐서 소수의 인원이지만 민심을 자기의 편으로 만들어서 성공을 하게 된것 같다. 다만 정권창출후에 너무 고지식한 나머지 금주와 도박 금지로 사람들의 원성을 산 점은 민심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그리고 쿠바를 점령한후에 체게바라는 게릴라의 영웅이 됬으며, 그의 부대의 지침은 다른 게릴라들에게 훌륭한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보면 그가 볼리비아에서 사망한 원인이 될수도 있을것이다.
전쟁이 끝난후에 다시 전쟁을 하게 되면 기존의 승자는 기존에 이긴방식으로 다시 전투에 임하게 되고, 기존의 패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투에 임하게 되는 전쟁의 법칙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체게바라는 조금씩 나아졌겠지만 기존에 자신이 싸워왔던 방식으로 다시 게릴라전에 임했고, 볼리비아군은 쿠바가 무너지는것을 본후에 기존의 쿠바의 정부군이 싸우던 방식과는 다르게 싸워서 체게바라를 잡을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항상 경영이나 인생에서도 참고해야할 점일것이다.
그리고 포로가 된후에 몇시간만에 미국과 볼리비아는 추후 문제가 발생되고, 곤란해질것을 우려해서 체게바라를 사형을 시키는데 역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그리고 국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전체적으로 읽은후에 정리를 하다보니 그의 이상적인.. 어찌보면 허황된것같은 희망과 꿈을 약간은 빈정데면서 읽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체게바라는 이상적이고 이루기 어렵운 희망이고 꿈이였기 때문에 짧은 생을 정말 불꽃처럼 살다가 간것이 아닌가 싶다.
대충, 쉬운 목표와 꿈을 가지고 산다면 그 인생도 대충 쉽게 살면 된다.
과연 나는 어떤 길을 걸을것인가... 다시 한번 진심으로 생각해보고, 나의 길을 찾아 가자!



<도서 정보>제   목 : 역사인물찾기-10  체 게바라 평전
저   자 : 장 코르미에
출판사 : 실천문학사
출판일 : 2000년 3월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5/11/25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원칙과 원대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 항상 깨어 있는 상태로 열심히 불꽃처럼 정렬적으로 살아가자!


<미디어 리뷰>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한 중류 가정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20대 초반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남미여행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의 삶의 지켜본 게바라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이 세계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1953년 과테말라로 간 그는 과테말라의 진보정당이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미국이 진보적 정부를 반대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멕시코로 간 게바라는 1956년 7월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면서 구체적인 쿠바혁명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 해 11월 쿠바에 상륙,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중심으로 게릴라 활동을 벌이며 혁명군을 모은다. 1958년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승기를 잡은 카스트로와 게바라는 1959년 1월 결국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다. 그 뒤 게바라는 쿠바 정부에서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했고, 공산권과 제3세계를 돌며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인다. 이때부터 검은 베레모와 구겨진 군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러나 1965년 4월 쿠바에서의 2인자 자리를 버리고 당시 내전중이던 아프리카 콩고로 가 콩고혁명을 위해 노력했다. 1년 뒤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숨어들어갔다. 볼리비아는 남미 5개국과 접경을 이루는 요충지로서 이곳에서의 활동이 혁명의 불씨를 전남미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볼리비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한편 CIA 요원을 파견, 게바라를 체포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결국 게바라는 1967년 10월 8일 체포된 뒤 처형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전세계 전장을 뛰어다닌 체 게바라는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었다. 검은 베레모에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그의 입술은 진보적인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여 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박차고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 등지에서 게릴라 활동을 계속하다 전장에서 숨진 게바라. 이 열정적 투사에 대해 당시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쿠바를 '해방'시킨 뒤 국립은행 총재 등의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하던 게바라의 모습은 가난한 민중들에게 성자로 추앙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체 게바라 열기는 그의 활동영역이 아니었던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식지 않고 있다. '단지 그의 정치적인 입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라는 수많은 회고담 속에서 잘 드러나듯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체 게바라는 언제나 살아 있다. 쿠바의 한 지도급 인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체와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60년대라는 시대상과 그 시대를 불꽃같이 살다간 게바라와 같은 인물을 다시 기대할 수 없는 이상 게바라는 앞으로도 '이상을 꿈꾸는 인간의 대표'로 남을 것이다.

'죽은 게바라가 산 독재자를 물리친다'라는 말이 있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처형된 지 30여 년이 된 현재 그가 추진했던 혁명은 아직 미완일 뿐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게바라의 죽음이 그 자체로서 남미 등 많은 지역의 반독재투쟁의 지표로 오늘날까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게바라의 후예들'은 그가 직접 활동했던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는 물론 멕시코, 미얀마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 코르미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전기작가이다. 그 동안 그는 체 게바라에 대한 많은 저술을 써왔고, 체 게바라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전문가로 인정을 받아왔다. 게바라에 관한 자료들을 집대성한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그는 체 게바라에 대해 남겨진 모든 자료들을 일갈해서 엮어놓고 있다. 체의 아버지를 비롯해 체가 살아 생전 관계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그의 모습을 전하고 있으며, 그가 남겨놓은 편지글이나 잡문들 거의 대부분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그 동안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은 수십 종이 출간되었으나, 67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더 이상의 체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을 만큼 체의 생애와 사상을 집대성해 놓은 이 책이야말로 '체 게바라' 전기의 최종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장 코르미에
장 코르미에는 일간 <파리지앵>의 전문기자로서 체 게바라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전문가로인정을 받아왔다. 1981년부터 그는 게바라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집대성한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반향을 얻었다.

<줄거리>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남미를 여행한후에 의사가 되고, 제국주의에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투쟁을 시작하고, 소수의 게릴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서 쿠바에 혁명정부를 세운후에 장관등을 지내다가 잠적후에 콩고, 볼리비아 등지에 홀연히 나타나 다시 게릴라부대로 혁명을 일으키다가 볼리비아에서 3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책속으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롤로그
천식을 앓는 아이
포데로사 2 를 타고
추키카마타에서 얻은 계시
마추픽추
나환자들의 빛 산파블로
플로리다에서

2. 일다 가데아와 피델 카스트로
아메리카의 병사가 가야 할 길
허니문
마리아 안토니아 집에서의 만남
일디타

3. 그란마 호에 탄 여든두 사람
갑판 위의 의사
알레그리아델피오 선택
미련한 군의관
쿠바 국민에게 고함
새로운 무기
대장의 별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
잘 싸우기 위해서는 잘 배워야 한다

4. 서쪽으로
공격개시
카밀로와의 전쟁놀이
산타클라라

5. 전쟁은 끝나고
아바나에서
이 방에 공산주의자가 있소?
장막에 가려진 부처
양대 블록 사이에서
타투 무간다

6. 볼리비아의 계략
체가 사라지다
볼리비아 일기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체에게 있어 게릴라 전이란 정확함 그 자체를 의미했다. 그들은 재미로 살상을 하지 않는다. 적을 대할 때조차 인간을 존중하는 자세는 승리한 뒤라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
체는 혁명운동을 한 차원 높였습니다. 강하고 신선한 바람 같았지요. 그에게는 뭔가 다른 어떤 것, 완전한 단순함이 있었습니다. 그건 의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인간에게서 발산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서 완전무결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총에 맞아 죽은 비쩍 마른 체의 작은 사진, 내면에서 뿜어나오는 빛으로 환해진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잡지에서 오려내어 간직했습니다. 감옥에 있었던 15년 내내 그 사진이 음산했던 내 삶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p539.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된다. 이 특질이 결여된 진정한 혁명가를 상상할 수는 없다. 냉정한 정신과 열정적인 정신을 조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눈 하나 꿈쩍 않고 고통스런 결정을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전위 혁명가들은 민중에 대한 이러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p. 507
우리 앞에는 끊없는 투쟁이 있음을 기억하거라.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 역시 투쟁의 대열에 끼어야 할것이다. 어른이 될때까지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여라. 이 말은 네 나이에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가능하다면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거라. 나는 네 나이에 그러지를 못했단다. 그 시대에는 인간의 적이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게는 다른 시대를 살 권리가 있다. 그러니 시대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p.534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엔 불가능한 꿈을 하나씩 갖자.'

머리말 중에서
사체 해부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이 ; 40세 가량
인종 ; 백인
신장 ; 약 1백73미터
머리카락 ; 밤색 곱슬머리, 역시 곱슬거리는 코밑수염과 턱수염이 있음, 짙은 눈썹
코 ; 곧음
입술 ; 얇음, 니코틴의 흔적이 남아 있고, 입이 반쯤 열려 있음, 왼쪽 안에 있는 어금니가 없음
눈 ; 연한 푸른색
체격 ; 보통
팔다리 ; 손과 발이 온전함, 왼쪽 손등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흉터가 있음.
1. 왼쪽 쇄골에서 같은 쪽 어깨를 관통하는 총상.
2. 오른쪽 쇄골 부근에 골절과 함께 총상. 총알이 뚫고 나가지 않음.
3. 오른쪽 늑골 부근에 총상. 총알이 뚫고 나가지 않음.
4. 왼쪽 측면 늑골 부근에서 등을 관통하는 총상 두 곳.
5. 9번과 10번 갈비뼈 사이 왼쪽 흉부에서 같은 쪽 측면을 관통하는 총상.
6. 오른쪽 다리에 총상.
7. 왼쪽 다리 근육에 경미한 총상.
8. 팔꿈치 골절과 함께 오른쪽 아래팔 안쪽에 총상.

사망원인은 흉부 총상과 출혈이다.--- p.645-646
사람들은 더러 체를 자유분방한 무정부주의자라고도 하지만 체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그는 영혼의 순례자였다...사랑이 담긴 희망을 내보였고, 타인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격렬한 의지를 가지고 타인의 삶에 관련된 것들에 무한한 관심을 보였다...그러기 위해 그는 투쟁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였다...그가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단언했을 때 이것은 '함께한다'는 것을 뜻한다...체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의 고통까지 함께했다...인류의 세번째 천년이 시작되는 시기에 잊지 않아야 하는 바로 그 휴머니즘의 전도자였다...--- p.664
볼리비아에 있을 때 야영지에서 체가 우리에게 정치와 관련한 강의를 했었습니다. 그때 그는 모든 게릴라 대원들이 볼리비아 사람들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페루를 해방시키려고 했다면 우리 모두가 페루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아일랜드 해방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의 투쟁은 라틴아메리카, 베트남 민중들의 투쟁과 같다. 모든 투쟁이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적이 바로 제국주의이다.'

그런 다음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했습니다. '인간은 태양을 향해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어야 한다. 태양은 인간을 불타오르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준다. 그가 고개를 숙인다면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p.655-656
그들은 재미로 싸우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수의를 놓고 주연을 베풀지도 않았다. 체가 비록 게릴라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는 하나 전투란 역시 압제를 해방시키기 위해 특별히 요청된 과정일 뿐이었다. 체는 거리에서 열광하는 군중들의 손을 잡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북부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야과하이로부터 상륙한 카밀로는 그 장면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이긴 뒤 뭘 해야 될지 알 것 같네'라고 체가 불쑥 입을 열었다.

'뭔데?'

'나는 자네를 우리에 넣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자네를 보여주겠네. 그럼 큰 돈을 벌 수 있을 걸세!'--- p.390
게바라를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한 사르트르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수행한 그 많은 임무를 체 게바라 이상으로 완벽하게 해낸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게바라 아버지인 에르네스토 게바라의 표현을 빌면 '진실에 대한 광적인 애정'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체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이런 완벽주의, 자신이 행하는 일들 중에서 자신의 신조와 배치되는 일체의 경우와 타협하지 못하는 그러한 완고함에서 찾아지는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시에라마 에스트라를 횡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건대  이 날은 축복받은 날이었음에 틀림없다.  투르키노 산 주변에서 가장 가파르고 험준한 계곡 중의 하나인 아구아베스를 지나.. 우리는 산체스 모스케라의 부대를 묵묵히 추적하는 중이었다.  이 냉혹한 살인마는 늘 뒤에 시체를 남겨놓고,  그 일대를 완전히 불살라버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중략)

 

 

내 임무는 산체스 모스케라를 후미에서 공격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단 그를 포위하는 것을 기본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이 일은 적의 후방부대가 불태워버린  농가들의 비극을  상기할 수 밖에 없게 했다.



비록 우리는 멀리 있었지만 적들의 고함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적들의 숫자가 총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부대가 힘겹게 산허리를 지나는 동안.. 적은 좁다란 계곡 깊숙이 전진해 가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새로운 마스코트가 아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마스코트란 세상에 나온 지 몇 주밖에 안된 작은 강아지를  일컬었다.  펠릭스가 아무리 뒤에 있는 우리의 야영지로 돌려 보내려고해도 이 강아지는 막무가내로 우리 뒤꽁무니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가느다란 길의 흔적조차 없는 산허리를 타고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죽은 나무가 새로 자라난 식물에 뒤덮여 있는 빽빽한 밀림지대를 통과하는 일은 그야말로 형벌이었다...(중략)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조차도 산의 일상적인 평화를 깰 수 있는  그런 지독한 정적 속에서 우리는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무거운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강아지가 급하게 짖어대는 것이었다.  녀석은 우리 뒤에 처져 있다가 더 이상 앞으로 나가기 힘들어지자  절박함에 우리를 부른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강아지를 안아올리자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감시병에게 적의 동태를 파악하도록 시키고  한 시냇가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사이,  강아지가 다시 짖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녀석은 우리 주의를 끄는 것도 부족한지  우리가 자기를 버리고 갈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했던 모양이었다.  결국 내 입에서 떨어진 명령이 얼마나 단호하였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펠릭스, 이 개가 더 이상 짖지 못하게 해라. 자네가 알아서 해!! 다시 짖지만 않게 하란 말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펠릭스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기진맥진한 채  빙 둘러선 대원들 한복판에서  펠릭스는 안절부절 못하며 강아지를 안고 서 있었다.  이윽고 그는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배낭에서 밧줄을 꺼내더니  그 어린 짐승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파닥거리던 꼬리가 한순간 심하게 경련하더니 차츰 움직임이 희미해져 갔다.  졸린 목구멍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모두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몸을 한 번 크게 팔딱거린 뒤 싸우기를 포기한 강아지는  나뭇단 속에 고개를 처박은 채 뒤에 남겨졌다.  누구도 그 사건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은 채 우리는 길을 재촉했다.... (중략)



날이 어둑해졌다. 우리는 녹초가 되어 역시 사람이 떠난  어떤 민가 앞에 멈춰섰다.  우리가 그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곳은  바로 이 마르베데르 지역이었다.  우리는 신속히 돼지고기와 감자 몇 알을 준비했다.  음식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잠시 후 누군가가 집 안에 남아 있던 기타를 집어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농가에는 얼마 간의 가재도구들이 남아 있게 마련이었다.




그 당시 우리를 감싸던 묘한 분위기가 노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어둠과 휴식이 가져다주는 나른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펠릭스가 뜯고 있던 뼈다귀를 던졌다.  그때 그 집에 남아 있던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잽싸게 뼈다귀를 물었다.




펠릭스가 그 개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개도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펠릭스가 개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의 눈빛속에 어른거리는 죄책감을 읽었다.  갑자기 무거운 정적이 우리를 덮쳤다.  다들 형언키 어려운 감상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또 다른 개의 부드러운 눈동자속에서.. 우리는 우리 손에 죽은 어린 강아지의 원망 섞인 눈빛을 설핏 보았다.

 

'체 게바라'의 <살해당한 강아지> 중에서 옮김.....



http://user.chollian.net/~thio/che-life.htm
http://www.che.co.kr/



체 게바라가 남긴 말

1.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전사로서 내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그러나 당장은 "타협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한다.
(1967)

2. 수단이 비열하다면 결코 목적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농림부 장관 재직시절)

3.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는,

기층민중을 헐벗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지 몰라도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중의 중에서 택일해댜 한다는 점이다.

자본중의는 인간을 제물로 삼는다.

한편 공산국가는 자율에 관한 한 전체적인 개념 때문에 인간의 권리를 희생시킨다.

우리가 그 어느 것도 일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혁명은 쿠바만의 주체적인 혁명이어야 한다

4. 이 곳은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다. 나는 우리가 콩고에서 제국주의자들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처럼 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
(콩고로 떠나기 전)

5. 우리 시대가 당면한 분제는, 기층 민중을 헐벗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먹고사는문제는 해결할 지 몰라도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중 택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1959년 초)

6.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인민들의 단 하나의 해결책은 무장투쟁이라고 굳게 믿고 이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모험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저는 단지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온몸으로 표시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험주의자라는 공격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편지 중에서)

7. 나는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 의지에 따른 신념의 소산이었다. 나는 68년 혁명을 함께 한 내 또래를 ‘메시아를 기대한 마지막 세대’로 본다.

8. 당신과 우리 민중에게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에게 바라는 것을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피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9. 우리는 이론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행동이다
(인터뷰 중에서)

10. 무릎을 꿇느니 서서 죽는 것을 택하겠다.
(인터뷰 중에서)

11. 피델에게는 아메리카에서 영광스러운 혁명 성공의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해주게. 내 아내에게는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전해주게나
(체가 죽기직전에 남긴 말 즉 유언..아내의 재혼까지 이야기하는 그의 용기..)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무릎 꿇느니 서서 죽는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의 육성과 자료가 있는 곳
http://windshoes.new21.org/person-che01.htm

http://windshoes.new21.org/person-che0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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