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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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강간을 당한후에 세월을 허비하면 자살을 몇번이나 살아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여자와...
사랑받지 못하고, 세상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살인강간을 저질러서 사형수가 되었지만,
수녀와 그녀와의 만남에 감화를 느끼고 새롭게 태어난는 그남자...
그리고 한번도 말한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느끼던 그들의 사랑...

얼마전 엽기적인 살인마의 출현으로 논란이 되었던 사형제도...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나쁜놈은 죽여버리면 되지 뭘 그런걸 가지고 난리야.. 라는 생각정도...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나서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것은 아니지만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것은 이런 사형제도가 왜 생겼는지... 왜 범죄자가 계속 나오는지.. 그 근본에는 사랑이라는것이 주범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사랑받지 못하고, 무관심하게 방치되어서 자라온 아이들은 범죄자가 되고, 그렇게 될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세상... 범죄자들이 잘못을 저지른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고, 방치한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튼 사랑, 생명, 세상에 대해서 진진하게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아주 괜찮은 책이였다.

출판사리뷰

<도서 정보>제   목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저   자 : 공지영
출판사 : 푸른숲
출판일 : 2005년 04월
책정보 : ISBN : 8971844299 | 482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4/24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영화 물랑루즈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남자가 무대에서 여자에게 창녀라고 돈을 주고 떠나는데 서로 아무말도 못하고 있을때 광대가 뛰어내리면서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거야"라고 외치던 장면이...
내가 내일 죽는다면 또는 죽어 가면서.. 가장 아쉬운것.. 가장 후회되는것이 무엇일까?
사랑하자.. 그리고 사랑받자... 다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디어 리뷰>
저자 : 공지영
1988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가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 있다. 21세기문학상과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 삶과 상처를 딛고 차마, 아무도 하지 못하는 용서를 하려는 사람들... 그분들과 함께 나는 감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나를 많이도 울렸으며, 인간에게는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것, 을 가르쳐주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등어』『봉순이 언니』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가 공지영이 7년만에 신작 장편을 가지고 돌아왔다.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남자, 세 번이나 자신을 살해하려 한 여자. 다른 듯 닮아 있는 두 남녀의 만남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본연의 문제를 깊이 있게 묘사한 소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짜 이야기'들을 나누며, 애써 외면해왔던 자기 안의 상처를 들추고 치유해나가는 둘의 모습이 슬프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각기 다른 여러 인물의 시각에서 신산한 세상살이와 삶의 상처들을 들여다본다. 겉으로는 아주 화려하고 가진 게 많은 듯 보이지만, 어린 시절에 겪었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냉소적인 삶을 살아가며 여러 번 자살기도를 했던 서른 살의 대학교수 문유정. 그리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상의 밑바닥으로만 떠돌다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스물일곱의 정윤수. 그 둘은 처음의 만남에서부터 마치 자신을 보는 듯 닮아 있는 서로의 모습을 ‘알아본’다.

그 둘이 보내온 시간은 겉으로는 그저 무심하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는 시간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사는 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시간으로, “때로는 서로가 빛이 되고 때로는 어둠이 되어 화석처럼 굳어 있는 고뇌의 심층에서 찬란한 빛의 조각들을 캐”(신영복)내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사랑, 용서, 진정한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

<책속으로>
술에 취한 아버지가깨어나면 눈에 보이는 대로, 그것이 몽둥이든 빗자루든 집어들고 동생을 두들겨 팰 집으로 그애를 보내야 하는 나도 마음은 아팠습니다. 그러나 빗줄기는 너무 거세었고 나는 싫다는 은수의 멱살을 붙들고 그애를 집 쪽으로 끌고 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그애를 두고 돌아서는데 동생은 나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돌아가 그애의 멱살을 잡아 다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뛰어가다 보니 또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달려가 동생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마치 거역이라고는 모르는 순종의 별에서 온 바보처럼, 은수는 맞으면서 내 윗도리 자락을 움겨쥐고 있었습니다. 나는 미친 듯이 그애를 두둘겨 팼습니다. 그애의 코에서 터져나온 피가 내 옷자락 위로 빗물과 함께 스며들었습니다.
"너 내 말 잘 들어. 너 지금 집에 가지 않으면 형아도 도망간다. 너 놔두고 도망간다. 가서 다시는 오지 않는다!"
울던 은수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그애가 힘없이 내 옷자락을 놓았습니다. 그건 그 아이에게는 사형선고보다 끔찍한 일이었겠지요. 은수는 원망스러운 듯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집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것이 내가 좀 그 아이의 마지막 눈동자 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은수가 본 나의 마지막 또렷한 모습이었습니다…….---p.19~20
고모가 마지막 말을 했을 때, 그가 얼핏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사람을 죽였고 이제 그 죄과로 인해 내일이라도 형장에 매달려 죽을 사람에게, 귀중한 사람 어쩌구 하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했다. 그러나 감정의 동요가 심한 자 특유의 불안한 기운이 그의 얼굴 위로 파도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식구들과 지긋지긋하게 싸움을 하고 난 후, 고모의 전화를 받을 때, 그때 고모가 마치 지금 그에게 하듯 저런 목소리로 내게 말하면 나는 갑자기 화가 치말어 올랐다. 말하자면 그건 내 감정 속으로 수혈되는 다른 피에 대한 거부 반응 같은 것이었다. 삶이든 감정이든 한 가지 혈액형일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게 옳든 그르든 악당은 악하고 반항아는 반항적인 것이 편안한 상태인 것이다.
"저한테 이러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저는 편히 죽을 수가 없습니다.....그래요 제가 수녀님을 만나러 오고 천주교 미사에 나가고 교도관들이 좋아하게 고분고분 말이란 말을 다 듣고....그리고 찬송가 부르고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고 , 그렇게 천사처럼 변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수녀님께서 저를 살려주시기라도 할 거란 말입니까?"
뜻밖의 말이었다. 그는 짐승처럼 흰 이를 드러내며 마지막 단어를 뱉었다. 모니카 고모의 얼굴이 일순 해쓱해졌다.
"그러니 그냥, 제발 이제 저를 찾아오지 마세요."---p.50~51
"위선을 행하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하든 말이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엷어… 그리고 고모가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들은 남들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그럴 때도 많지만 한가지만은 안돼.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거라는 걸, 그걸 놓치면 우리 모두 함께 죽어. 그리고 그게 뭐라도 죽음은 좋지 않은 거야…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그러고 보니 그녀가 신문에 나든 그렇지 않든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삼촌이 슬픈 어조로 내게 충고했듯이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리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기도해주거라. 기도해. 사형수들 위해서도 말고, 죄인들을 위해서도 말고, 자기가 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는 안다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위해서 언제나 기도해라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댓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댓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댓말이기도 한 것이다.
...........................................정말로 모른다는 말처럼 무책임하며 무관심의 표현도
없는듯 합니다.

"착한거. 그거 바보 같은거 아니야.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거 무른 거 아니야.
남 때문에 우는 거. 자기가 잘못한 거 생각하면서 가슴 아픈 거. 그게 설사 감상이든. 뭐든. 그거 예쁘고 좋은 거야.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받는거. 그거 창피한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다. 정신적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 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은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 동안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알베르 카뮈 <단두대에 대한 성찰>-

" 살려만 주자는 거지, 석방하라는 게 아니야. 어차피 죽잖아. 그래봤자, 살려놓아봤자. 기껏 오십년도 안돼서 다 죽잖아...... 오빠는 사는게 그렇게 좋아? 그래서 살려주는게 그렇게 배 아파?
오빠, 나 그 자식 죽이고 싶었어!
그래, 알아. 죽이는거 나쁜거야. 그래서 못 했어. 그럴 용기는 없었고 기회도 없었어......
그런데 만약 내가 그랬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 자식은 인간쓰레기니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 자식 목을 매달아놓으면, 그건 살인이고, 그렇게 살인한 나를 데려다, 살인자라고 목을 매달면 그건 정의인가? 똑같이 인간이 인간을 죽어 마땅하다고 판단하고 똑같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데, 그래 오빠 말대로 하나는 살인이 되고, 하나는 집행이 되고, 하나는 살인자가 되어 그 죄값으로 죽고, 하나는 승진을 하는 거......
그게 정의인가? "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누구도, 극악무도한 인간이라 해도, 설사 악마의 화신이라 해도 그를 포기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지요. 우리는 모두 전적으로 선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누구도 결백하지만은 않으니까, 우리는 다만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악하니까, 산다는 것이 속죄를 하든 더 죄를 짓든 그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한테는 그걸 막을 권리가 없는 거니까....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모른다' 는 말로 지나치고 말았을, 몰라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참회하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 삶과 상처를 딛고 차마, 아무도 하지 못하는 용서를 하려는 사람들, 남을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처지에서 선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분들과 함께 나는 감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비록 거기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분재된 내 삶의 잔해들을 치우며 비참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나와 만나면서 조금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기를 기도할 수 있었다.

유정이 누님, 나 생각했는데 ... 처음으로 살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 수갑 찬 손으로라도 아이들한테 편지쓰고, 나 수갑찬 몸으로라도 여기서 있는 힘껏 사람들에게 내가 받았던 사람 전하면서... 평생 그렇게 피해자들 위해 기도하고 속죄하면서... 여길 수도원처럼 생각하면서 살면... 나 그렇게라도 살아있으면 혹시 안 될까, 염치없지만, 정말 염치 없지만 나 처음 그런 생각했어요...
그것이 내가 윤수를 본 마지막이었다. (268pg)

우리가 예측할 수 있고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죽음인 처형을 ... 그러나 우리는 막을 수가 없었다 (276pg)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살아서 마지막으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내 입으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말, 을 꼭 하고 싶었다고 ...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만나던 그 시간, 우리가 마셨던 인스턴트 커피,
우리가 나누었던 작은 빵,
일주일에 그 몇시간으로 인해 저는 어떤 모욕도 참아낼 수 있었고,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었으며,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고, 저 자신의 죄를 신께 뉘우치며 참회했다고 말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진정 귀중하고 또 따뜻하고 ..........
행복한 시간을 가졌었다고,
혹여 허락하신다면,
말하고 싶다고.......
당신의 당처받은 영혼을 내 목숨을 다해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살아서 마지막으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내입으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 말,
을 꼭 하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윤수의 블루노트 중.

내 눈에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거의 십오 년 만에 울어보는 울음 때문에 목이 많이 아팠다. 목이 졸려오는 것처럼 아팠다.

"용서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하지만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어. 나도 한 가지쯤은 희생을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고.... 내가 제일 하기 어려운 걸로, 내가 죽기보다 싫다고 행각하는 걸로....그게 엄마야!"
용서....... 하려고 왔던 거야. 나는 고집스레 말했다.

"내일 집행이 있대. 죽일 거라구! 혹시 내가 안 하던 짓을 하면 혹시 내가..... 바보 같은 생각인 줄 알지만,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 혹시 하느님이 계신다면, 제가 이러는거, 이게 나한테는 죽는 거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거 알 테니까, 날 이쁘게 봐서 혹시라도, 무슨 기적을..... 일으켜줄까바....오빠, 나 이해할 수 있어?
오빠가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죽을 줄 알았던 신부님도 살아 오셨다는데.....이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니면 우리는 눈을 뜨고.....오빠 내가 무엇을 해야지? 이건 공평하지 않았아. 몇번이나 죽으려고 했던 나를 데려가시는 게 맞잖아. 죄라면 나도 못지 않잖아."
"내가...... 사랑해보려고 했었단 말이야. 살아만 있으면."
"내 입으로 누구한테도 그런 말을......해본적이 없었어 오빠."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또 실패였다. 그랬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아니에요, 저 사형수 누나 아니에요!"
이주임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각 그는 고개를 떨구고 시선을 피했다. 그의 눈은 몹시 충혈되어 있었다. 갑자기, 내가, 저사형수 누나 아니에요, 했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구치소 담 밑에 서서 울었다. 세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처럼 울었다. 시간은 열 시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나는 아직도 그 울컥, 의 내용을 다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냥 내가 행복이라고 믿었던 행복이 정말 행복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분노와 회한이 버무려지면서
끔찍한 기분이었다. 창밖을 보니까
강물이 검은 머리를 길게 길게
풀어내리고 있는 거 같았다.
모든 것이 결국은 기적이 아닐까.


-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에서 -


* 오랫동안 책을 펼쳐 보지도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와 '귀차니즘'에 빠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머릿속이 녹스는지도 모르고....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데,
가끔 경종을 울리는 글귀를 보거나 경험했을 때
한번쯤 삶의 뒤안길에서 서성거린다.
촉촉하게 젖어드는 눈가를 의식하면서
누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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