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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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이 끝나고 역적중에 친구의 시신을 몰래 묻어주고, 나중에 그의 딸을 첩으로 빼돌려 양인으로 만들어준 임상옥은 비변사에게 걸려서 1년간 유배를 가게되지만, 술자리에서 계영배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계영배를 깨버린 사람의 배려로 유배를 끝낸다. 그리고 계영배의 비밀을 찾아다니던 임상옥은 나라에 자기를 납품하는 명장의 수양아들이 만든것임을 알게되고, 그가 사라졌다는것을 알고 예전에 절의 스님에게 돌아가지만 그 스님은 얼마전에 돌아가셨다고 하고, 그때가 계영배가 깨진 바로 그날임을 알게되고, 주지스님이 바로 그 수양아들이라는것을 알게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는 큰집을 줄여서 없애고, 마음속에 큰집을 짓기로 한다. 그리고 친구의 딸인 송이의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그녀와의 연을 끊고 돌아와서 모든 상권을 동업자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조용히 물러난다.

사슴을 쫓다보면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쫓다보면 사람을 보지못한다는것을 계영배를 통해서 느낀 임상옥.. 모든것을 포기하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그의 용기와 용단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토록 사랑하던 송이와의 연을 끊을때 저자는 김유신, 읍찹마속,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등 많은 비유를 든다. 물은 한번 흘러가면 끝이고, 마음도 떠나가면 그만이라는 말과함께...
나에게도 끊어야 할것들.. 버려야 할것들이 많다... 과연 나도 김유신처럼... 제갈공명처럼.. 부처님처럼 용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살아갈수 있을까?
그래야 하는데.. 너무도 용기가 없고, 단호하지 못하고, 나약하고, 비겁하다.. 그리고 이런 내가 부끄러울뿐이다...


<도서 정보>제   목 : 상도4
저   자 : 최인호
출판사 : 여백미디어
출판일 : 2000년 11월
책정보 : ISBN : 8985804545 | 페이지 : 262 | 406g
구매처 : 오디오북
구매일 :
일   독 : 2006/10/23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책 읽은 계기>



<미디어 리뷰>


<줄거리>


<책속으로>
1. 계영배의 비밀
누란지위
계영배의 비밀
석숭 스님
길 없는 길

'이제야 아시겠는가. 박공. 내가 왜 이 새집을 허물어뜨리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는가. 그렇소이다. 내게 있어 이 집은 새 집이 아니라 바로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인 것이외다. 하늘에 떠 있는 신기루인 것이외다.'--- p.199
스스로 상계에서 물러나 가객이 됨으로써 금강사에서 새벽 종소리를 들었을 때 깨달았던 길 없는 길의 세 번째 길을 완성한 임상옥은 자신이 자서한 <가포집> 서문에서 자신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꾼 '계영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이루게 해준 것은 그 하나의 잔이었다 (生我者父母 成我者一杯)'

그렇다. 그 술잔, 계영배는 임상옥을 거상에서 거인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이때의 심경을 임상옥은 <가포집> 서문에 담담한 필치로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 '...새 집을 짓고 입주하여 들어오매, 숲과 연못, 꽃과 돌 사이에 새들이 날아와 다투어 집을 지으며 지저귄다. 가히 책을 읽고 시를 지으면서 만년에 휴식을 취할 장소가 될 만하다.'--- p.262
송이는 방안에서 떠나는 임상옥의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와 양어미 산홍의 호들갑스런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송이는 숨죽여 듣고 있었다. 자칫 통곡으로 터져 흐르려는 눈물을 막기 위해서
송이는 입안에 가득 숨을 베어물고 있었다. 가신다. 임께서 떠나가신다. 떠나가시오면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신다. 아아, 날더러 어찌 살라시고 나를 버리고 떠나가신다.마침내 임상옥이 문 밖으로 나아가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가자 송이는 노리개로 차고 있던 칼집 속에서 날카로운 은장도를 빼어들었다. 은장도. 송이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옷고름에 차고 다니던 패도. 그러나 이제 정절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송이는 칼집에서 날카로운 칼을 빼어들고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유시사에는 상대를 공격하거나, 마지막으로는 자결하기 위해서 갖고 다니던 칼이 아니었던가. 허공으로 치켜들었던 은장도를 송이는 순간 내리찍었다.

송이의 손에서 은장도는 춤추었다. 베틀 위에 거의 완성되어 가던 명주옷의 실을 은장도는 단숨에 베어내었다. 임이 오시면 만들어 주리라 일년여 동안 직접 짜던 명주옷이었다. 그러나 이제 떠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임을 위해 옷감을 짜서 무엇하며, 옷을 지어 무엇할 것인가. 임은 떠났다. 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송이는 베틀에 걸려 있는 명주옷을 은장도로 갈갈이 찢어내리면서 무너졌다. 마침내 참았던 울음이 통곡이 되어 터져 흘렀다. 날더러는 어찌 살라 하시고 나를 버리고 떠나시고 말았다.--- pp.249-250
동이 트기 전에 임상옥과 송이는 곽산을 떠나 가산으로 출발하였다. 임상옥은 말을 타고 떠났으나 송이는 교부들이 맨 가마를 타고 떠났다. 간밤에 이른대로 송이는 흰 상복을 입지 아니하였으나 삼베로 만든 최를 양쪽 가슴에 매달았으며 백댕기라 하여서 삼베로 만든 헝겊으로 머리를 묶고 있었다.

예로부터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어도 3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었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드는 해는 철이 늦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산을 찾아가는 길 양옆에는 유난히 철이 이른 탓인지 흐드러지게 봄꽃이 피고 있었다.

가산은 곽산보다 남쪽에 있었고, 청천강과 대령강의 두 강줄기가 합쳐지는 그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한촌이었다. 길은 멀지 않았지만 주위에 첩첩한 산이 많아 가고 오기가 수월치 않았다.

해가 있는 동안에 성묘를 마치고, 해거름까지는 곽산으로 돌아와야 했으므로 임상옥은 인부들을 재촉하여 서둘러 길을 가도록 명령하였다. 임상옥은 20여 년 만에 가산으로 이희저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임상옥은 종자가 이끄는 대로 말을 타고 가면서도 줄곧 마음이 착잡하였다. 남의 눈을 피해 매장을 하였으니 묘비는 물론 봉분조차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였는데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하였으므로 20여 년 전에 묻었던 이희저의 묘자리를 어떻게 쉽사리 찾아낼 수 있으리오.---pp.221~222
곽산에서 돌아온 임상옥은 즉시 금강사에서 새벽 종소리를 들었을 때 깨달았던 길 없는 길 중에서 그 세 번째의 길을 실행에 옮길 것을 결심하였다. 이미 스스로 지은 집을 파기하는 것으로 그 첫 번째의 길을 실천하였던 임상옥은 사랑하는 송이와의 인연을 끊고 이별함으로써 두 번째의 길 없는 길을 행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번째의 길이었다.임상옥은 조촐한 주안상을 차린 후 박종일을 불러들여 단둘이 마주앉았다. 주거니 받거니 몇 순배의 술잔이 오간 뒤 임상옥이 먼저 입을 열어 말하였다.--- p.254

정히 그러하시겠다면 언제부터 파가를 하시겠나이까"
"지금부터"
조금도 거리낌도 없이 임상옥은 단박 대답하였다.
"바로 당장 여기서부터"
"하오나"
박종일은 말을 잘랐다.
"지금은 엄동설한이나이다. 밖은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있는 한겨울이나이다.
그러하오니 한겨울은 새 집에서 보내셨다가 봄이 되어 집을 파가하여도 늦지 않으실 것이나이다,
나으리. 그러하오니 한 철만 늦추셨다가 새 봄이 들었을 때 이를 시행함이 옳을까 하나이다"
박종일의 말을 들은 임상옥은 마시던 술잔을 갑자기 탁자 위에 내려 놓으며 말하였다.
"옛 중국의 건봉선사에게 제자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물었소이다.
'사방이 다 불토로 뚫리고 큰길 하나가 곧바로 열반의 문으로 뚫였는데
그 길을 가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까'
이 질문에 건봉선사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네.
'눈앞이 곧 길이다'
그리고 나서 건봉은 이렇게 말하였소.
'곧바로 여기에서 출발하라'
이보시게나, 박공. 공중에 뜬 누각을 허물어뜨리는데 때를 살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바다 위에 뜬 신기루를 무너뜨리는데 때를 살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하오니 옛 스님이 말씀하였듯, '곧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만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니 박공, 당장 내일 아침부터 시작하시오"

읍참마속.
촉한의 제갈량이 군령을 어긴 마속을 눈물을 흘리면서 목을 베었다는 고사처럼
사랑하는 송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길은 송이의 목을 단칼에 내려치는 것임을 임상옥은 깨달을 수 있었다.

송이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은 단칼에 인연의 끈을 끊어버림으로써 그녀를 자유롭게 하여 주는 것이다.
사사로운 정념으로 그녀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송이의 목숨을 단칼에 내리킴으로써
그녀를 죽여버리는 일인 것이다.
이제야말로 송이를 죽여버릴 바로 그때가 다가온 것이다.

해거름에 서둘러 돌아오는 길이었으므로 뉘엿뉘엿 해는 지고 있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와 철쭉꽃 사이로 소쩍소쩍- 피를 토하면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그 소쩍새의 애조띤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임상옥은 묵묵히 옛 신라시대 때의 고사를 떠올렸다.

신라 진평왕 때 유명한 기생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천관, 혹은 천관녀라고 하였다.
그녀는 소년 시절 화랑이었던 김유신과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
우연히 천관의 집에 유숙한 뒤로 하루도 그녀를 보지 못하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김유신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이 일을 알게 된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김유신을 불러 앉히고 울면서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

"네가 성장하여 공명을 세워 임금과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기를 밤낮으로 바랬었는데
이제 너는 천한 년과 술집에서 놀아나고 있단 말이냐"

이때 김유신은 어머니 앞에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실제로 어머니와의 약속은 지켜져서 김유신은 그 이후 천관녀의 집을 지나지 않았으나
어느 날 술에 취해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깜박 마상에서 잠이 들었는데
말은 이전에 다니던 옛길을 따라 기녀 천관녀의 집으로 찾아간 것이었다.
천관녀는 원망하던 김유신이 찾아오자 맨발로 달려나와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말 위에서 잠을 깬 김유신은 놀라 술이 깨었으며
그 순간 김유신은 칼을 빼어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안장을 버린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를 본 천관녀는 원사라는 사랑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는 널리 불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전해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훗날 천관녀는 김유신을 그리다가 병에 걸려 죽었으며
김유신은 그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천관녀의 집자리에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을 천관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가 탔던 말의 목을 베어 죽인 자리를 참마항이라 불렀는데,
뒷날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큰 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말의 목을 베어버린
참마항에서 움튼 것이라는 이야기를 임상옥은 소년시절 행자 노릇을 할 무렵 승려들로부터 전해들었던 것이다.

참마항.
말의 목을 베어 죽인 바로 그곳. 말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림으로써 애욕을 끊어버린 김유신처럼
이제 나도 미몽에서 깨어난 말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애욕. 이성에 집착하는 성적인 욕망.
송이를 향한 육체적 욕망.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일찍이 부처는 애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이 거동하면 신하도 따라가듯 애욕이 가는 곳에는 항상 미혹이 따른다.
습한 땅에 잡초가 무성하듯 애욕의 습지에는 번뇌의 잡초가 무성한다.
또한 애욕은 나찰의 딸과 같아 아이를 낳는 대로 잡아먹고 마침내는 자기의 남편까지도 잡아먹는다.
중생들이 선업의 아이를 낳으면 낳는 대로 잡아먹고 중생까지도 잡아먹는다.
애욕은 또한 꽃밭에 숨은 독사와 같다.
사람들이 꽃을 탐해 꽃을 꺽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중생들은 오욕의 꽃을 탐하다가 애욕을 뿜는 독사의 독을 받고 마침내 악도에 떨어진다"

그리고 나서 부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차라리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에 몸에는 대지 말라.
이와 같은 인연도 악도에 떨어져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욕은 착한 법을 태워버리는 불꽃과 같아서 모든 공덕을 없애버린다.
애욕을 얽어묶은 밧줄과 같고 시퍼런 칼날을 밟는 것과 같다.
애욕은 험한 가시덤불을 뛰어드는 것과 같고 성난 독사를 건드린 것과 같으며 더러운 시궁창과 같은 것이다"

어느덧 주위는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둠이 내리기 전에 곽산읍내에 도착한 것이다.
말 위에 오래 앉아 종자가 이끄는 대로 우쭐우쭐 타고 가면서
임상옥은 묵묵히 귓가를 때리는 부처의 사자후를 마음에 새겨들었다.
이제야말로 말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애욕의 굵은 밧줄을 끊어버릴 때인 것이다.
애욕의 습지에 돋아난 번뇌의 잡초를 뿌리채 뽑아 버릴 때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금강사에서 새벽 종소리를 들었을 때 깨달았던 길 없는 길의 두 번째 행인 것이다.
송이를 향한 애욕의 번뇌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일인 것이다.


"다시 한 잔 더 따라주지 아니하겠느냐"

술 석 잔의 삼배였다.
예로부터 술 석 잔의 삼배를 마신다 함은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 놓겠다는,
술자리에 있어서의 주도였던 것이다.

송이 역시 그 주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없이 두 손으로 다시 빈 잔을 채웠다.
이미 마신 술이 상당하여 취했을 법도 하건만 임상옥은 조금도 취한 기색이 없이
묵묵히 송이가 따라주는 삼배를 들이켜고 나서 빈 술잔을 소리가 나도록 술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송이를 마주보며 입을 열어 말하였다.

"네가 물으니 내가 분명 대답할 것이다.
묻지 아니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송이 네가 물으니, 그러면 내가 대답하겠다.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모든 것이 내 소원대로 이루어졌다"

문득 말을 그치며 임상옥은 벼루를 가져오게 한 후 붓에 먹을 듬뿍 묻혀서 종이 위에 단숨에 한시를 써내려갔다.
임상옥이 종이 위에 쓴 시는 다음과 같았다.

하마음군주
문군하소지
군언부득의
귀와남산수
단거막부문
백운무진시

단숨에 흰 종이 위에 한시를 써내리고 나서 임상옥이 송이에게 물어 말하였다.

"이 시가 누구의 시인지 알고 있느냐"

"알고 있나이다. 당의 시인 왕유의 시이나이다"

"그렇다"

임상옥은 붓을 던지며 말하였다.

"이 시는 왕유의 '송별'이라는 시이니라"

임상옥은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 내리면서 자신이 쓴 왕유의 시를 읊어 내려갔다.

"말에서 내려 그대에게 술을 권하면서,
그대에게 묻노니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그대 말하기를 '뜻을 얻지 못하면 남산 언저리에 돌아가 눕겠네',
'그저 가게 다시 묻지 않겠네. 흰구름이 끝날 때가 없을 테니까' "

왕유의 시를 읊고 나서 임상옥이 송이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송이가 내게 술을 권하며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하고 물으니 내가 왕유의 시를 빌어 대답하노라.
송이야, 나는 이제 너의 질문에 대답하노라"

임상옥이 마치 타령을 하듯 노래조로 말을 하였다.

"나는 이제 뜻을 얻지 못하였으니 남산 언저리에 돌아가 누울 것이다.
그러니 송이야, 다시는 내게 어디로 갈 것인가 묻지를 말아라.
어차피 흰구름이 그칠 때는 없을 터니까"

왕유의 시를 빌려 한바탕의 타령을 끝내고 나서 임상옥이 말을 맺었다.

"송이야, 너는 이제 내 마음에서 떠났음이니라.
한 번 흘러간 물은 거꾸로 흘러갈 수 없고 한 번 흘러간 마음은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니라"

그리고 그만이었다.
그것이 송이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임상옥의 최종답변이었던 것이다.
임상옥의 마지막 답변을 들은 송이가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나으리, 잘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나서 송이는 천천히 임상옥에게 삼배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두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으나 흘러내리지는 아니하였다.
그것은 작별의 인사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삼배를 올림으로써 이제는 사랑의 인연과 애욕의 인연을 끊고,
그 동안 베풀어 준 은덕에 감사한다는 마음을 담는 송별의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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