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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빅토르 프랭클의 강연을 토대로 만든 책
기존의 수용소 생활을 바탕으로 한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 잘 짚어보고, 그러한 질문에 우리가 어떠한 답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는 살면서 고뇌를 하기도 하고, 역경을 겪기도 하지만, 그러한 삶속에서 항상 삶의 물음에 예라고 답을 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 책임을 져가며,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이 순간에 실천하고, 실행을 해며 살아가야 한다고...
어찌보면 뻔한 결과로의 귀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뻔한 이야기가 왜 그래야 하는지, 왜 우리가 순간순간을 책임을 져가며 살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질문과 견해를 고쳐가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책을 보는 내내 삶의 의미가 뭐냐고 질문을 하던 내가 아니라, 과연 삶이.. 인생이 나에게 너의 인생의 의미를 무엇이냐고, 너의 존재의 의미를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고 싶지만, 쉽게 답을 할수 없었고, 책을 덮고난 지금도 그 답에 대해서 뭐라 답을 할수가 없다.
과연 언제나 나를 죽이고, 그 삶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책임을 지며 살아갈수 있을련지...
빅토르 프랑클의 책을 읽어보고 의미있게 받아들이신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고 그 질문에 답해보면 좋을 책인듯...
다만 번역하신분이 철학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나의 독해력이 떨어져서 그러지 예전 책에 비해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 느낌이 다소 든다...
<도서 정보>
제 목 :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원서 : ...trotzdem Ja zum Leben sagen : Drei Vortrage )
저 자 : 빅토르 E. 프랑클 저/남기호 역
출판사 : 산해
출판일 : 2009년 4월
책정보 : 176쪽 | 286g ISBN-13 9788989763857
구매처 : Yes24
구매일 : 2009/11/10
일 독 : 2010/1/14
재 독 :
정 리 :
<책 읽은 계기>
오 부헨발트여, 나는 너를 잊을 수 없네,
너는 나의 운명이기에.
나를 떠난 사람은 비로소 알 수 있으리,
자유가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오 부헨발트여, 우리는 통곡하지 않고 슬퍼한다네,
그리곤 우리 운명이 무엇일지라도.
우리는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언젠가는 그 날이 오려니, 그러면 우리는 자유로울 것이기에!
(부헨발트는 나치가 바이마르의 에테르스베르크에 세운 최대 최초의 강제수용소입니다. 위 글을 쓴 뢰너베다와 레오폴디는 수감생활 중에 이 노래를 지었으며, 뢰너베다는 결국 부헨발트에서 사망했습니다.)
<미디어 리뷰>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로고테라피 심리치료 요법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신경정신의학자 빅토르 프랑클의 강연집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겪은 저자의 극한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다. 저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삶, 인간을 인간 이하로 전락시키는 삶 속에서도, 그 삶이 너에게 의미 있느냐는 물음에, 너는 의미 있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당당하게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용기와 의지로 죽음의 수용소를 이겨낸 저자는 전쟁 후 좌절과 비관에 빠진 사람들에게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저 자는 삶의 의미를 묻는 물음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잘못 설정된 것인가를 지적한다. 물음은 오히려 삶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다름아닌 우리의 삶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삶에 책임지고 답변하는 존재라고 인식할 때 비로소 현실 앞에 맞닥뜨린 두려움을 이겨내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가지게 할 것이다
<줄거리>
“빅토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 이후 강연원고 국내 최초 공개”
죽 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와 긍정의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로고테라피’라는 심리치료 기법으로 발전시킨 빅토르 프랑클. 그의 이름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류의 물질문명과 정신문화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믿음은 붕괴했다. 그 처참한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자고, 삶을 긍정하자고, 학살과 만행을 고발하고 규탄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을 실존주의적으로 고찰하며 붕괴된 인간 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주장한 사람이 그 당시 가장 혹독한 고난을 겪은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홀로코스트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이 책은 수용소에서 돌아온 빅토르 프랑클이 그 다음해 빈의 시민대학에서 세 번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빅토르 프랑클은 이 강연집에 역시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간 가극 작가 프리츠 뢰너베다가 지은 「부헨발트의 노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을 붙였다. “...trotzdem Ja zum Leben sagen(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삶, 인간을 인간 이하로 전락시키는 삶 속에서도, 그 삶이 너에게 의미 있느냐는 물음에, 너는 의미 있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당당하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그 제목에서 빛난다. 그 용기와 의지로 죽음의 수용소를 이겨낸 빅토르 프랑클은 전쟁 후 좌절과 비관에 빠진 사람들에게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것을 주문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의 의지란 60여 년 전 죽음의 수용소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삶’이란 결국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되는 무엇일 수밖에 없다.
<책속으로>
서문
제1강 -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제2강 - 삶의 물음에 책임 있는 답변을 위하여
제3강 - 시련의 실험:강제수용소 심리학에 대하여
옮긴이의 글
빅토르 프랑클 연보
빅토르 프랑클 저서 목록
한 흑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악마의 섬’으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태운 리바이어던 호라는 배가 망망대해에 이르렀을 때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긴박했기에 사람들은 죄수의 수갑을 풀어주었고 그는 사람들과 함께 구조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열 명이나 구해냈지요. 이로 인해서 그는 사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묻습니다. 만약 승선 전에, 마르세유 선창가에서 누군가가 이 죄수에게 삶이 아직도 그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물었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는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우리 중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위대한 순간이, 유일무이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어떤 단 한 번의 기회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말입니다. 열 명의 사람을 구하는 순간이 리바이어던 호의 그 흑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 pp.36-37
한 강제수용소에서 언젠가 저는 전부터 알고 지냈던 젊은 여자분과 마주쳤습니다. 수용소에서 재회했을 때 그녀는 비참한 상황에서 중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도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죽기 며칠 전에 그녀는 말했지요. “저는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운명에게 감사해요. 예전에 저는 문학에 대해 야심이 컸어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주 진지하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지금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행복하답니다. 지금은 모든 것에 진지해졌어요. 그리고 저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이전에 알던 모습보다 더 쾌활했습니다. 릴케가 모든 인간에게 요구했던 대로 행동하는 것을 그녀는 허락받은 셈입니다. 릴케는 모든 인간을 위해 소망했지요. “자신의 죽음을 죽을 수 있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죽음마저도 삶 전체에 의미 있게끔 구비해놓는 것, 정말이지 죽음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본래적으로 충족시키는 것 말입니다. --- pp.81-82
서로서로 여러 겹으로 팔짱을 끼고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질질 끌려갔습니다. 굶주림 때문에 퉁퉁 부은 다리는 평균 잡아 40킬로그램밖에 안 나가는 몸뚱이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발은 온통 구두에 쓸려 곪고 동상으로 갈라터져 상처가 났기에 몹시 아팠지요. 그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작업을 마치고 수용소로 돌아가면 먹게 도리 수프 한 그릇을 생각했습니다. 매일 저녁 한 번씩 식량으로 배급되는 수프 말이죠. 오늘 저녁엔 국물만 아니라 거기 떠다니는 감자 조각이라도 운좋게 얻지 않을까. 또한 15분 후 다음 작업이 개시되면 어떤 작업반에 배속될지 생각해보기도 했지요. 무서운 감시병이 있는 작업반에 들어가게 될까 아니면 비교적 편안한 작업반에 들어가게 될까 하고 말이지요. 그들의 생각은 수용소 수감자의 일상적인 고민들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들 중 한 명에게 이러한 생각들이 어쨌든 간에 너무 어리석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다른 생각들로 도약해보려 했지요, ‘좀더 인간의 존엄에 걸맞은’ 고민들 쪽으로 말이지요. …… 여러분이 그 무리 속에 있는 이 남자를 좀더 가까이서 보았다면 그의 상의와 바지에 작은 천 조각이 하나씩 꿰매어져 있는 것을 알아보셨을 것입니다. 그 위에 119.104라 쓰인 번호를 읽을 수 있으셨을 테죠. 여러분이 다카우의 수용소 기록부를 찾아보셨다면 이 번호 옆에 수감자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프랑클, 빅토르. --- pp.117-119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들이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하고 노래한 건 단지 노래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노랫말을 갖가지 방식으로 실행했던 것입니다. 그들과 또 다른 수용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말입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조건들 속에서도 그것을 실행했습니다. 그 조건들이 어땠는지는 이제 와서야 제대로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도 오늘날 비교적 더 좋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더 나은 상황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정이 있다 해도 가능한 것입니다. 삶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것이 제가 해온 이 세 번의 강연 전체의 최종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보여드렸지요.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첫 번째 강의), 육체적이거나 심리적인 질병에도 불구하고(두 번째 강의), 또는 강제수용소의 운명 속에서도(세 번째 강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수용소 생활을 바탕으로 한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 잘 짚어보고, 그러한 질문에 우리가 어떠한 답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는 살면서 고뇌를 하기도 하고, 역경을 겪기도 하지만, 그러한 삶속에서 항상 삶의 물음에 예라고 답을 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 책임을 져가며,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이 순간에 실천하고, 실행을 해며 살아가야 한다고...
어찌보면 뻔한 결과로의 귀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뻔한 이야기가 왜 그래야 하는지, 왜 우리가 순간순간을 책임을 져가며 살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질문과 견해를 고쳐가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책을 보는 내내 삶의 의미가 뭐냐고 질문을 하던 내가 아니라, 과연 삶이.. 인생이 나에게 너의 인생의 의미를 무엇이냐고, 너의 존재의 의미를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고 싶지만, 쉽게 답을 할수 없었고, 책을 덮고난 지금도 그 답에 대해서 뭐라 답을 할수가 없다.
과연 언제나 나를 죽이고, 그 삶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책임을 지며 살아갈수 있을련지...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 빅토르 E.프랑클 지음, 남기호 옮김/산해 |
삶의 의미를 찾아서 - 빅토르 프랑클 지음, 이희재 옮김/아이서브 |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청아출판사 |
빅토르 프랑클의 책을 읽어보고 의미있게 받아들이신 분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고 그 질문에 답해보면 좋을 책인듯...
다만 번역하신분이 철학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나의 독해력이 떨어져서 그러지 예전 책에 비해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 느낌이 다소 든다...
<도서 정보>
제 목 :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원서 : ...trotzdem Ja zum Leben sagen : Drei Vortrage )
저 자 : 빅토르 E. 프랑클 저/남기호 역
출판사 : 산해
출판일 : 2009년 4월
책정보 : 176쪽 | 286g ISBN-13 9788989763857
구매처 : Yes24
구매일 : 2009/11/10
일 독 : 2010/1/14
재 독 :
정 리 :
<책 읽은 계기>
오 부헨발트여, 나는 너를 잊을 수 없네,
너는 나의 운명이기에.
나를 떠난 사람은 비로소 알 수 있으리,
자유가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오 부헨발트여, 우리는 통곡하지 않고 슬퍼한다네,
그리곤 우리 운명이 무엇일지라도.
우리는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언젠가는 그 날이 오려니, 그러면 우리는 자유로울 것이기에!
(부헨발트는 나치가 바이마르의 에테르스베르크에 세운 최대 최초의 강제수용소입니다. 위 글을 쓴 뢰너베다와 레오폴디는 수감생활 중에 이 노래를 지었으며, 뢰너베다는 결국 부헨발트에서 사망했습니다.)
<미디어 리뷰>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로고테라피 심리치료 요법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신경정신의학자 빅토르 프랑클의 강연집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겪은 저자의 극한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다. 저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삶, 인간을 인간 이하로 전락시키는 삶 속에서도, 그 삶이 너에게 의미 있느냐는 물음에, 너는 의미 있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당당하게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용기와 의지로 죽음의 수용소를 이겨낸 저자는 전쟁 후 좌절과 비관에 빠진 사람들에게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저 자는 삶의 의미를 묻는 물음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잘못 설정된 것인가를 지적한다. 물음은 오히려 삶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다름아닌 우리의 삶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삶에 책임지고 답변하는 존재라고 인식할 때 비로소 현실 앞에 맞닥뜨린 두려움을 이겨내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가지게 할 것이다
저 : 빅터 프랭클
역자 : 남기호
<줄거리>
“빅토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 이후 강연원고 국내 최초 공개”
죽 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와 긍정의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로고테라피’라는 심리치료 기법으로 발전시킨 빅토르 프랑클. 그의 이름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류의 물질문명과 정신문화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인간의 존엄에 대한 믿음은 붕괴했다. 그 처참한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자고, 삶을 긍정하자고, 학살과 만행을 고발하고 규탄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을 실존주의적으로 고찰하며 붕괴된 인간 정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주장한 사람이 그 당시 가장 혹독한 고난을 겪은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홀로코스트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이 책은 수용소에서 돌아온 빅토르 프랑클이 그 다음해 빈의 시민대학에서 세 번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빅토르 프랑클은 이 강연집에 역시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간 가극 작가 프리츠 뢰너베다가 지은 「부헨발트의 노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을 붙였다. “...trotzdem Ja zum Leben sagen(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삶, 인간을 인간 이하로 전락시키는 삶 속에서도, 그 삶이 너에게 의미 있느냐는 물음에, 너는 의미 있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당당하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그 제목에서 빛난다. 그 용기와 의지로 죽음의 수용소를 이겨낸 빅토르 프랑클은 전쟁 후 좌절과 비관에 빠진 사람들에게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것을 주문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의 의지란 60여 년 전 죽음의 수용소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삶’이란 결국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되는 무엇일 수밖에 없다.
<책속으로>
서문
제1강 -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제2강 - 삶의 물음에 책임 있는 답변을 위하여
제3강 - 시련의 실험:강제수용소 심리학에 대하여
옮긴이의 글
빅토르 프랑클 연보
빅토르 프랑클 저서 목록
한 흑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악마의 섬’으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태운 리바이어던 호라는 배가 망망대해에 이르렀을 때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긴박했기에 사람들은 죄수의 수갑을 풀어주었고 그는 사람들과 함께 구조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열 명이나 구해냈지요. 이로 인해서 그는 사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묻습니다. 만약 승선 전에, 마르세유 선창가에서 누군가가 이 죄수에게 삶이 아직도 그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물었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는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우리 중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위대한 순간이, 유일무이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어떤 단 한 번의 기회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말입니다. 열 명의 사람을 구하는 순간이 리바이어던 호의 그 흑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 pp.36-37
한 강제수용소에서 언젠가 저는 전부터 알고 지냈던 젊은 여자분과 마주쳤습니다. 수용소에서 재회했을 때 그녀는 비참한 상황에서 중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도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죽기 며칠 전에 그녀는 말했지요. “저는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온 운명에게 감사해요. 예전에 저는 문학에 대해 야심이 컸어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주 진지하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지금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행복하답니다. 지금은 모든 것에 진지해졌어요. 그리고 저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이전에 알던 모습보다 더 쾌활했습니다. 릴케가 모든 인간에게 요구했던 대로 행동하는 것을 그녀는 허락받은 셈입니다. 릴케는 모든 인간을 위해 소망했지요. “자신의 죽음을 죽을 수 있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죽음마저도 삶 전체에 의미 있게끔 구비해놓는 것, 정말이지 죽음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본래적으로 충족시키는 것 말입니다. --- pp.81-82
서로서로 여러 겹으로 팔짱을 끼고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질질 끌려갔습니다. 굶주림 때문에 퉁퉁 부은 다리는 평균 잡아 40킬로그램밖에 안 나가는 몸뚱이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발은 온통 구두에 쓸려 곪고 동상으로 갈라터져 상처가 났기에 몹시 아팠지요. 그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작업을 마치고 수용소로 돌아가면 먹게 도리 수프 한 그릇을 생각했습니다. 매일 저녁 한 번씩 식량으로 배급되는 수프 말이죠. 오늘 저녁엔 국물만 아니라 거기 떠다니는 감자 조각이라도 운좋게 얻지 않을까. 또한 15분 후 다음 작업이 개시되면 어떤 작업반에 배속될지 생각해보기도 했지요. 무서운 감시병이 있는 작업반에 들어가게 될까 아니면 비교적 편안한 작업반에 들어가게 될까 하고 말이지요. 그들의 생각은 수용소 수감자의 일상적인 고민들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들 중 한 명에게 이러한 생각들이 어쨌든 간에 너무 어리석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다른 생각들로 도약해보려 했지요, ‘좀더 인간의 존엄에 걸맞은’ 고민들 쪽으로 말이지요. …… 여러분이 그 무리 속에 있는 이 남자를 좀더 가까이서 보았다면 그의 상의와 바지에 작은 천 조각이 하나씩 꿰매어져 있는 것을 알아보셨을 것입니다. 그 위에 119.104라 쓰인 번호를 읽을 수 있으셨을 테죠. 여러분이 다카우의 수용소 기록부를 찾아보셨다면 이 번호 옆에 수감자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프랑클, 빅토르. --- pp.117-119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들이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하고 노래한 건 단지 노래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노랫말을 갖가지 방식으로 실행했던 것입니다. 그들과 또 다른 수용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말입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조건들 속에서도 그것을 실행했습니다. 그 조건들이 어땠는지는 이제 와서야 제대로 말할 수 있지요. 그런데도 오늘날 비교적 더 좋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더 나은 상황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므로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정이 있다 해도 가능한 것입니다. 삶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것이 제가 해온 이 세 번의 강연 전체의 최종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보여드렸지요.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첫 번째 강의), 육체적이거나 심리적인 질병에도 불구하고(두 번째 강의), 또는 강제수용소의 운명 속에서도(세 번째 강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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