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 -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 (사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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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야구이외의 모습을 통해서 박찬호의 색다른 모습을 돌아본 방송...
우리는 흔히 그의 승패를 가지고 일희일비를 해왔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그의 노력이나 사명감, 한국의 대표하는 자부심 등을 잘 보여준다...
어찌보면 이제는 먹고 살만해서 그만 두고 편안하게 살수도 있지만, 불펜투수로 남아서 아직까지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유나 모습까지도 너무나도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방송...
방송을 보고나서 이제 끝이 아니라,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박찬호 선수 파이팅! 이라는 말밖에... 올해도 월드시리즈 우승반지 하나 꼭 끼시고 금위환양하시길~

기획의도


대한민국 1호 메이저리거, 코리안 특급. 그동안 박찬호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많았다. 아직도 한국의 팬들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는다는 그.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과거에 멈추어 있는 것 아닐까.
서른일곱 노장 선수 박찬호가 힘겹게 털어놓은 그의 ‘진짜’ 야구 이야기,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지난 1월, 국가대표 은퇴 기자회견에서 돌연 눈물을 쏟아냈던 박찬호. 사람들은 물었다. 그에게 있어 국가대표란 어떤 의미인가? 충분한 부와 명예를 얻었는데 왜 여전히 마운드를 고집하는 것인가? 그가 털어놓은 대답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박찬호의 미국 현지 생활모습 최초공개!
가족과 함께 하는 그의 모습에는 마운드에 올랐을 때의 치열함 대신 여유가 묻어난다. 아내(박리혜), 두 딸(박애린/3살, 박세린/1살)과 함께 꾸려나가는 박찬호 가족의 웃음 가득한 일상과 ‘보통 사람’ 박찬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주요내용

 
1. 아빠 그리고 남편, 찬호씨

 





“저희 딸 애린이를 보면서 그런 걸 느껴요. 이런 게 자식이구나. 애린이가 본능적으로 저한테 주는 감동이 많거든요.” - 박찬호 INT 中

 

가족을 위해 공을 던질 수 있어 행복하고 그로 인해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박찬호! 처음 본 제작진에게도 먼저 다가와 손 키스를 날리는 애교는 기본, 노래 실력까지 아낌없이 뽐낸 애린(여/3살). 원정 떠나는 아빠를 향해 유모차에 누워 손을 흔드는 세린(여/1살)의 사랑스런 모습과 더불어 이들과 함께 하는 박찬호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아빠’ 박찬호가 공개한, 소소하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육아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박찬호 선수 본인 말대로 자기가 우리나라에서 신랑감 1위로 뽑혔다는데 리혜씨가 일본에서 날아와서 선을 볼 줄 알았죠. 박찬호 선수도 그렇게 생각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근데 안 온다는 거예요.” - 차인표 INT 中

 

“너무너무 결혼 하자고 하니까 할 수 없이 했죠. 저는 찬호씨가 나라에서 그렇게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몰랐었거든요. 그래가지고 저는 찬호씨랑 결혼하면 좋을 거다 꿈이 없었어요. 야구 선수 부인이 진짜 얼마나 힘들 건지는 모르지만 아주 많이 힘들 거라는 그런 게 약간 걱정이 많았어요.” - 박리혜, 박찬호 아내 INT 中

 

6번째 만남이 결혼식이었다는 박찬호 부부. 첫 만남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미국, 일본을 오가며 1년 동안 끊임없이 벌어진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아내 리혜씨의 이상형은 순한 인상의 쌍꺼풀 없는 소위 ‘권상우 스타일’의 ‘간장남’이었지만 남편의 첫인상은? 당대 최고의 1등 신랑감을 만나보지도 않고 퇴짜 놓았던 이유는? 인터뷰 도중 아내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박찬호와 제작진, 결국 촬영이 잠시 중단되었는데...

 

재일동포 3세 출신으로 메뉴플래너와 푸드라이터를 겸하는 프랑스 요리전문가인 아내 박리혜씨. 야구에 관심조차 없었고 더욱이 야구선수의 부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그녀는 어느새 야구 전문가가 되어 남편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내고 있다. 결혼과 동시에 일을 포기해야했지만, 이제는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 말하는 그녀만의 특별한 요리 비법을 소개한다.

 


2. ‘메이저리거’ 박찬호 -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박찬호의 힘든 시기를 함께 했던 차인표>               <박찬호의 30년 죽마고우 홍원기 코치>

    <박찬호의 심리상담을 맡고 있는 하비도프만>             <야구 국가대표 후배 송승준 선수>

 

“어떠한 방법이든 메이저리그까지 기어가라면 기어가든 아무튼 어떤 일을 시키더라도 그걸 다 수긍하고 메이저리그를 다시 갈 수 있는 길이라면 해야 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을 때가 있었죠.” - 박찬호 INT 中

 

“먹는 거 욕심, 서로 지기 싫어하는 그런 것도 좀 많았던 것 같아요.” - 홍원기, 히어로즈 투수코치 INT 中

 

“오늘은 운동은 이것까지 해야 된다 그러면 그거보다 한 개 더해요. 항상.” - 이태일, 네이버 스포츠 실장 INT 中

 

미국 현지에서 박찬호를 24시간 밀착 취재했던 당시 특파원들, 30년 지기 죽마고우 홍원기 히어로즈 코치, 담당 심리학 박사인 하비 도프만 등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본 이들이 입을 열었다! 박찬호가 머리에 양말 하나 매고 새벽에 바닷가를 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10년째 박찬호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는 도프만 박사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그의 첫마디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박찬호 지인들의 생생한 증언과 본인이 털어놓은 속 깊은 이야기가 공개된다. 또한, 국내에서 한 번도 중계되지 않았던 박찬호의 2007년 마이너리그 경기 자료 및 텍사스 시절 루키리그(*마이너리그 중 최하위 리그) 미공개 영상을 통해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박찬호의 또 다른 모습을 조명해본다.



 3. 당신들의 이방인, 우리의 영원한 코리안 특급 - 박찬호에게 대한민국이란



 

“항상 저는 제 이름을 안 불리고 코리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요. 제가 모든 걸 해도 아 코리언은 이러냐. 좋은 걸 하면 코리언이 좋다. 나쁜 걸 하면 코리언은 이러냐. 뭐 이런 것들. 이런 소리를 항상 듣기 때문에 그런 일 있을 때마다 저를 욕을 하고 저한테 좀 하면 한국을 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요.” - 박찬호 INT 中

 

2009년 1월 13일, 그가 울었다. 최고 161km의 직구를 던진 185cm 95kg 거구의, 37세의 남자. 10년 동안 국가대표로 그 누구보다 제 역할을 다 해냈던 그가 왜 많은 기자들 앞에서 국가대표 은퇴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름 대신 ‘KOREAN’이라 불렸던, 그래서 자신을 욕하면 한국을 욕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한 구 한 구를 던졌기에... 그에게 있어 조국과 국가대표의 의미는 더욱 남달랐다는데. 야구를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애국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박찬호, 그에게 있어 야구와 애국의 의미를 알아본다.

 


4. 박찬호의 끝나지 않은 경기 - 그가 아직도 마운드에 오르는 이유


“누구나 다 그런 뭐...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거예요. 저도 한 때는 그런 생각이 들고...”
                                                                                                     - 박찬호 INT 中

 

“이 마음 한 구석에서 아직도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 박찬호 INT 中

 

메이저리그 통산 120승 투수에 이르기까지.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6천5백만 달러에 계약을 했던 특급 투수는 2008년, 50만 달러에 LA다저스 스프링캠프 초청선수가 되었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뒤로 끝없이 이어진 부진, 이내 마이너리그로의 추락. 그에게 있어 야구는 삶 그 자체이기에, 반복되는 침체기는 감당하기 벅찬 시련일 수밖에 없었다. ‘코리안 특급’에게 환호했던 이들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격려와 용기 대신 ‘먹튀’라는 별명, 쏟아지는 악플, 은퇴를 논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한 때 죽음까지 생각했던 혹독한 기간,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신과의 긴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재기에 성공했다.

 

지금이 있기까지, 많은 것을 견뎌내고 또 포기해야했지만 이제는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쥐어 편히 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국의 팬들을 생각하며 마운드에 오른다는 박찬호.
서른일곱, 그가 밝히는 야구 인생의 마무리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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