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CEO 특강 -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사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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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원으로 시작해서 회사의 수장까지 오르고, 이후에 창업을 하고, 공장을 지으면서 부지런한 활동을 해온 코리아나 사장의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과 CEO가 되려면 이라는 주제의 강연...

한마디로 이야기를 하자면 기본에 충실하라는 이야기이고,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고, 도전하고, 적극적으로 살라는 상투적인 말씀...

하지만 그는 그의 말을 평생을 꾸준히 지켜와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것이고, 범자들은 뻔히 아는 그말들을 실천하지 못해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깨달을수 있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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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할 수 있는 화장이 그에게는 비즈니스의 순간이다!

 국내 화장품 업계의 중견회사인 코리아나 화장품의 CEO, 유상옥 회장!
 삼십년간 화장품 업계에서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는 화장품으로 한 우물을 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에는 늦었다고 말하는 나이에 과감하게 화장품 업계에 도전장을 던진 CEO, 유상옥 회장. 강의 내내 그의 말 한마디마다 패기와 열정이 느껴졌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특별해 보이지만, 화장은 그에게 있어 철저한 비즈니스의 순간이다.
 그만의 패기와 열정으로 화장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며 하루하루를 쉼없이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서 배움을 위한 끊임없는 마인드에 대해 들어본다.
 
 * 인재가 기업을 키우고 기업 속에서 인재가 자란다!  

 그는 사회에 곧 나가게 될 대학생들을 위해 사회적 교육기관이자 배움의 공간인 직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 할 인재상에 대해 말했다.
 인재의 육성이 기업의 성공열쇠라는 믿음을 일찍부터 가진 그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직원들과 애사심과 열정, 비전을 나누고 있다고 말하는 그. 그는 직장에서 성공하는 인재상이란 먼저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며,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남과 더불어 일할 줄 아는 사람, 자기 일에 책임지는 사람 등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보이지만 쉽게 놓치기 쉬운 인재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게서 듣는 기업 속의 인재 마인드, 지금 알아보자.

코리아나 유상옥 회장 홈페이지 http://www.yusangok.pe.kr/

나는 1933년 충남 청양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3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누에 치고, 목화 따고 밭일을 돌보며 밤을 꼬박 새워 일을 하셨다.
어려운 살림살이였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 집을 옮기셨고, 고교 시절 나는 신문 보급소장을 하면서 학비를 조달했다. 조석간이 나오던 때라 새벽잠을 설치고, 학교 종례도 마치지 못한채 신문을 돌리며 뛰어다녔다.
그 시절 나의 최고 소원은 '맘껏 자보는 것'.

우리가족이 살았던 서대문구 현저동은 당시만해도 가난한 산동네였다.
아침마다 우물물 뜨는 전쟁을 한바탕 치러야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추운 겨울이면 뱀처럼 긴 줄을 서서 물 뜨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도 전쟁이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된 일을 하다보니 폐결핵에 걸려 각혈까지 하기도 했다.
나는 지독한 가난을 떨쳐내기 위해 은행에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덕수상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졸업 즈음에 고대 상경대로 진로를 바꿨다. 배울수록 더 큰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1년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집안의 가장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59년 '동아제약'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고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미국 유니온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냈다.
이러한 나의 노력은 회사로부터 인정받아 입사 9년째인 68년 35살의 나이로 기획관리 이사가 되었다.
동아제약 계열사인 라미 화장품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1977년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코리아나 화장품경영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라미 화장품을 매출액 500억원대의 공개법인으로 성장시키기까지 나는 직원들과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라미 화장품에서 동아제약그룹내의 박카스병 납품업체인 동아유리로 밀려나고 말았다. 예고없는 인사발령은 샐러리맨으로서 내가 꿈꾸는 사업의 이상을 실현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출발점에 섰다. 창업을 결심한 것이다.

88년 서울 종로구 예일빌딩의 30평짜리 사무실, 전화기 2대, 영업사원 5명...
코리아나 화장품이었다. 하청공장보다 못한 여건에서 출발했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5년만에 매출액 1,000억 원을 돌파하며 500대 기업에 진입하였고 지난해는 극심한 내수부진으로 대부분의 화장품업체들이 고전하는 가운데도 코리아나를 업계3위로 올려놓았다. 또한 국내 화장품 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집안 어른의 중매로 만난 지금의 아내(이의현씨)와 60년에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나 고생을 모르던 아내는 나를 만나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맏며느리로서 가난한 살림살이에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늘 쌀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무뚝뚝한 나는 집안 살림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교적인 성향이 강했던 나는 아녀자는 남편이 가는 길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자상함이나 잔정도 없는 편이다. 아내가 무던한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사람들은 나에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나는 단지 내 자신을 위해 그리고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노력했을 뿐이다. 동아제약 시절,일이 끝난 후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회사에서 밤새워 공부해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후로도 계속된 나의 학구열은 그치지 않았다. 공부는 꿈을 이루기 위한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도 한 달에 평균 5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최근 감명깊게 읽은 책은 도꾸다 도라오의 '성공의 철학'과 안병욱의 '인생론'이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려는 사람은 스스로를 갈고 다듬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평상시 사원들에게도 '학이시습지'를 강조한다.
신입사원들을 면접할 때 이 다음에 회사에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곤 한다. 기껏해야 '부장이요' 하는 사람들은 당장 집에 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꿈과 야망이 없는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꿈과 야망이 없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여 개선할 힘도 없는 사람이다. 동아제약에서 말단 직원일 때도 나는 사장이 되겠다는 야망이 있었기에 남보다 배로 뛰었었다. 일개 직원이 스스로를 미래의 사장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회사를 위해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 기업, 내 삶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전력을 다하는 자세, 나는 그것을 기업가 정신이라고 부른다.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온 노력의 결정체는 2003년 강남구 신사동에 스페이스 씨(space*c)를 개관한 것이다. 스페이스 씨는 30여년 동안 모은 5,300여 점의 전통 화장유물을 전시하는 “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코리아나 미술관”, 국내 최초의 뮤지엄 까페 “카페 스페이스C”, 옥상에 위치한 하늘 정원인 “c garden”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장용구와 장신구 등 각종 여성 생활용품, 도자기 등의 유물을 통해 전통 생활문화, 화장문화를 모든 국민과 함께 향유하며 한국의 화장문화 수준을 한단계 높이고 있다.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의 유물은 지난 2006년 한ㆍ불수교 12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에서도 전시회를 가져 현지인들의 갈채를 받은 바 있다.

나는 인류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나누는 화장품 회사를 창업하고, 문화재를 모아 박물관을 세워 후세에 전하기까지 이른 것에 참으로 감사한다. 앞으로 코리아나가 이 땅의 화장문화, 나아가 세계의 화장문화를 이끄는 훌륭한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며, 그 일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오늘도 나는 내일을 계획하고, 내년을 계획하고, 새로운 천년의 미래를 준비한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한 사람은 흔치 않다.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이 쏟은 노력과 열정은 흘려버리기 쉽다.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는 지금까지 70명의 성공한 사람을 다뤘고 매회마다 그 비결을 소개했다.이들의 비결에는 공통점이 있다.


△공짜는 없다

우연히 이뤄진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모형건축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기흥성씨는 수많은 밤샘작업 끝에 심장병을 얻었다. 기씨는 10년째 달아온 심장박동기를 `훈장'이라고 되뇌었다.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 안철수 대표는 1천만 달러를 포기했다.외국의 유명업체가 백신프로그램 V3 기술인수에 1천만 달러를 제의했지만 결국 우리나라 시장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선택의 상황에서 돈과 명예는 빼놓는다는 게 안씨의 지론이다.이명현 전교육부장관은 여자를 사귀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44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하는 고집을 부렸다.초등학교만 졸업한 학력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교수,교육부장관에 이른 이전장관의 삶의 철학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미쳐야 한다

동시통역사 최정화씨는 프랑스 파리 통역대학원 시절 꿈도 한·불·영 3개국 언어로 꾸었다고 한다.최씨는 통역대학원에서 동양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실력 1백%에 4백%를 더 준비한다는 신념으로 노력했다.중앙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박사는 수술시 왼손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후배들에게 왼손식사를 강요하고 밤마다 방석 꿰매는 연습을 시킨다.수술 현장에서 실수를 하면 가해지는 폭력과 욕설,상식을 넘어서는 송박사의 행동에는 1백%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


△남보다 한 발 빨라야 한다

여자 경찰서장인 김강자 서장 앞에는 최초라는 말이 따라다닌다.김서장은 최초의 여성경감,최초의 여자형사기동대 창설,교총순찰대 등 여경의 업무영역을 개척해냈다는 평가를 들었다.6개 국어를 구사하는 IOC 김운용 위원은 국제화시대에 외국어가 무기라는 생각에 학창시절부터 영어와 스페인어,불어를 공부했다.


△너무 늦은 시작은 없다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애니메이터 신능균씨가 “2류 애니메이터는 되기 싫다”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나이는 35세.결국 미국 에미상을 4회나 수상하는 성공을 일궈냈다.코리아나 유상옥 사장은 55세의 나이로 창업을 결심하고 동사무소에서 서류 떼는 일부터 새로 배웠다.


△낙천적이다

울산 모래벌판 사진 한 장을 들고 4천5백만 달러의 차관을 얻어내 조선소를 만든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얘기는 업계에서는 신화로 통한다.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공무원 시절 보고서를 13번이나 퇴짜를 맞으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문공부 차관에서 퇴임하는 날 학원 수강신청을 한 낙천적 사고방식이 비영화인 출신으로 해외영화제의 심사위원장까지 위촉된 비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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