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전문가 참존 김광석 신앙간증 & 성공스토리 (동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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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강연을 몇번 들었지만, 그가 기독교인이고, 소망교회 장로님이라는것은 이번에 처음알았다는...
강증을 듣고나니 그동안 들었던 강연에서는 그의 성공의 핵심적인 신앙과 믿음이 빠진듯한 느낌이...
뭐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신앙적인면에서 그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보고 싶다면 아래의 동영상을, 자기개발이나 성공학적인 면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나 엄길청의 성공시대나 EBS CEO 특강을 참고하시길~

피부전문가 김광석, 청개구리 경영철학
ebs ceo 특강 - 청개구리 박사의 위기극복 전략


한계상황.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약국에서 제조한 피부약을 다른 약국에 판매하는 것이 이렇게 큰 죄일 줄은 정말 몰랐다.

1979년 겨울. 나는 경남 양산의 한 사찰에 도피해 있었다. 내가 조제한 약을 다른 약국에 판매한 죄로 무려 8억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피신한 것이다. 산속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그리고 살을 도려내듯 차가웠다. 밤만 되면 산짐승처럼 꺼이꺼이 울부짖었다. 억울했다. 거액의 벌금은 너무도 가혹한 조치였다. 국민의 건강생활에 기여한 점을 감안한다면 경고조치 정도로 끝낼 수도 있지 않은가.

반공연맹중부지부장 중구새마을협의회장 마을금고연합회장 등을 맡아 많은 봉사를 해왔던 공로는 무슨 소용인가. 새마을훈장 협동장을 받은 나를 이 정부가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것인가. 좋은 약을 만들어 환자를 낫게 한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인가. 이건 정말 억울하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구쳐올랐다. 그때 암자의 작은 골방에 지저분한 신문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이미 빛이 바랜 몇달 전 신문이었다. 누런 종이 위에 고딕체의 기사제목이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무허가 약사 벌금 8억3000만원 선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와 비슷한 형편에 처한 사람이 또 있었던 모양이었다. 신문을 집어들고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그 기사는 바로 내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신문을 이 방에 갖다놓은 모양이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섬세하게 조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나를 악기처럼 다루는 그 조율사는 누구인가?

“하나님.”

암자에서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을 불렀다. 그때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하나님,지금 저를 시험하고 계시는 거지요? 시험을 능히 이겨낼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암자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그동안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을 설득해 개종시키곤 했다. 그래서 아무도 선뜻 내게 기독교를 말하지 않았다. 이런 내가 하루아침에 하나님을 찾은 것은 기적이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지은 죄악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그 안으로 급하고 강한 바람이 무수히 관통했다. 분노 억울함 증오 서러움 등이 작은 입자로 변해 무수히 방출됐다. 아,그 시원함…. 세상의 모든 걱정을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냈다. 가슴이 텅 비었을 때 그곳에 평강과 희락이 채워졌다. 기도생활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이제부터 나도 예수를 한번 잘 믿어볼까.

문득 정신을 차렸다. 내 몸은 눈물과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는 말끔하게 걷히고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이 충만했다. 이제 정면돌파 인생을 살자. 더 이상 도피인생을 살아선 안된다. 그래,언제까지 도망만 다닌단 말인가. 당당하게 자수하자. 하나님께서 내게 분명히 더 좋은 선물을 주실 것이다.

암자에서 내려와 경찰서로 향했다.

“제가 바로 김광석입니다.”

경찰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 내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역경의 열매―김광석 ⑵] 다니던 타종교 집회서 기독교 개종선언
기사입력 : 2005.01.10, 15:26

 56일 동안의 영등포교도소 생활은 내게 참 좋은 인생의 약이 됐다. 그동안의 교만을 낱낱이 회개하는 기회였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한 가지 소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출소하면 교회에 열심히 나가리라. 나도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고통스런 오늘을 아주 멋지게 간증하리라.”


교도소 생활은 아주 평안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타종교를 깊이 믿으시던 어머니의 성화가 빗발쳤다. 어머니는 출소한 나를 불러앉히고 거듭 강조했다.

“한 가정이 두 종교를 믿으면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어미가 공을 들였기 때문에 네가 풀려난 것이다. 오늘부터 벌금 액수를 줄여달라고 다시 기도를 시작할 것이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집회처를 찾아갔다. 그 건물은 내가 그 모임의 신도회장을 맡았을 때 건축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내가 나타나자 모두 손을 꼭 잡고 걱정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좀 들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신도들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도무지 기쁨의 흔적이 없었다.

“여러분,나는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그것은 가히 폭탄선언이었다.

“이번에 제가 큰일을 치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어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삶을 원격 조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어요. 오직 절대자만이 불변의 진리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기독교인들은 표정이 밝습니다. 그들은 찬양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없어요.”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어머니는 거의 기절할 정도로 흥분돼 있었다. 아들이 사람들 앞에서 개종을 선언한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으신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참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손짓을 하시며 ‘너의 양식을 준비해두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인자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위로해주셨다.

“아들아,수고했다. 지금까지 네게 닥친 고난은 사랑의 매였느니라. 이제부터 네 삶은 내가 책임진다.”

나는 엉엉 울었다. 그동안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잠에서 깨어나자 나는 정말 울고 있었다. 베개는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하나님,감사합니다. 제 삶을 인도해주시옵소서.”

그날부터 잠버릇도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그 동안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새우잠을 잤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수면을 취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이었다.

1984년에 나는 드디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회사명을 ‘부한화장품’으로 정했다. 그속에는 ‘부유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나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화장품명을 참존화장품으로 정했다. 거기에는 ‘참 좋다’는 뜻과 ‘매력지대’(Charm Zone)라는 뜻이 포함돼 있었다. 가진 것이라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주여,저는 매니저일 뿐입니다. 사장은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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