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을 가다 : 영남대로 950리 삼남대로 970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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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두껍고, 엄청나게 많은 강, 길, 언덕, 정자 암튼 무진장 많은 지명이 나오고, 거기에 얽힌 사연도 많이 소개해준다.
나와 이름이 같은 고산자 김정호선생의 대동여지도를 가지고 옛길과 비교해 가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영남대로와 삼남과 서울을 잊는 삼난대로 거의 2000리를 걸으면서 옛길을 더듬어 보고, 과거를 회상하고, 변화되고, 사라질 길들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직업이 무엇인지.. 벌어놓은 돈은 좀 있는지.. 이들 부부에게 궁금한것도 많고, 그 많은 지명에 대한 수많은 사연과 유래까지 소개를 하는것을 보니 엄청난 준비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생업을 포기하면서 까지 여행을 떠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고, 남편의 결정에 따라준 젊은 아내가 부럽기도 하고, 어디 이런 여자없나라는 생각도 들고...
언젠가 나도 좋은 여행코스를 골라서 멋진 여행기를 써보고 싶다.

대동여지전도의백두대간

자유촌에 오셨습니다.

대동지지 열 개 대로를 따라 걷는 조선의 옛길 여행......

설 렁 줄

 

 

자유촌에 들어가기

△ 동여도의 열 개 대로

△ 한강의 위성 사진과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가 얼마나 정확한가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사진 위쪽의 검은 부분이 목멱산(남산), 오른쪽 끝이 아차산이며 그 가운데 물줄기는 중량천이다.
아래 관악산의 산줄기도 정확히 일치하며 사진에서 산줄기가 보이지 않는 부분은 택지로 개발되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크게 변한 곳이 잠실섬(녹색)으로서 북쪽에 연결된 섬이었으나 샛강이였던 신천은 넓히고 본 강은 메워 남쪽 뭍에 붙여 버렸다. 현재의 석촌호수가 본디 한강이 흐르던 곳으로 동호와 서호 사이인 송파대로에 송파진이 있었다.

△ 한강 개발 전후의 여의도 주변 모습

60여 가구 4백여 명이 살던 밤섬(동그라미)은 여의도와 이어져 있었으나 여의도 신도시 개발로 인한 둑쌓기(윤중제)에 흙을 제공할 겸 폭파하여 지금은 늪지가 되었다.

섬이었던 왼쪽의 난지도는 뭍에 붙여져 거대한 쓰레기 산이 되었고, 양화진과 뱃길이 닿던 곳은 양화대교가 거쳐가는 인공섬(선유도)이 되었으며 정조가 능행시 배다리를 놓았던 자리 또한 인공섬(노들섬)이 되었다.

 

△ 백제고도 공주의 산성과 쌍수정 부근에서 바라본 금강의 정경.

말과 우차를 실은 뗏배의 모습.
<사진,글 : 한겨레신문>

△ 청주는 도시발달이 정체되었다가 20년대 충북선이 개통되면서 근대도시로 본격적인 탈바꿈을 한다.

20년대 청주남단의 무심천을 가로질렀던 청주석교와 행인들의 모습이다.
<사진,글 : 한겨레신문>

일제시대 인천의 중심가 본정의 풍경.

개항지 도시가 그랬듯이 어수선한 느낌이 역력하다. 앞쪽의 밀짚모자를 쓴 조선인 주민의 뒷모습과 교모에 일본풍 교복을 차려 입은 초등학생 꼬마의 모습이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멀리 검은 옷의 중국인도 보인다.

<사진,글 : 한겨레신문>



<도서 정보>제   목 : 옛길을 가다 : 영남대로 950리 삼남대로 970리
저   자 : 김재홍,송연 부부 공저
출판사 : 한얼미디어
출판일 : 2005년 10월
구매일 :
일   독 : 2006/1/20
재   독 :
정   리 :

<이것만은 꼭>
떠나자! 그대와 함께...


<미디어 리뷰>
저자 : 김재홍, 송연
부부 사이이자 옛길을 걷는 동지이기도 한 김재홍과 송연은 각각, 1958년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현 의정부시), 1969년 경기도 양주군 샘내에서 태어났다. 2000년, 김재홍·송연 부부는 내면의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인도 배낭여행을 계획, 그 전초전으로 동해안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동해안과 서해의 태안반도, 그리고 민통선을 고루 걸으며 우리 땅이 매력적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길로 도보여행가로 나섰다. 길을 걸으며 우리의 고유한 옛길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길을 이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 속에서 옛길 탐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동여지도》, 《해동지도》와 같은 옛 지도와 옛 문헌을 사전조사하고, 마을에 가서 어르신들의 구술을 받아 옛길의 흔적을 좇았다. 김재홍·송연 부부가 함께 걸은 길은 ‘영남대로’, ‘삼남대로’ 옛길을 포함하여 무려 4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부부는 현재 생업에 복귀, 의정부에서 ‘옛길 따라’라는 주막집을 운영한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경흥의 서수라까지 연결했던 옛 경흥대로가 뻗어 있다는 이유로, 건물 3층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가게 자리를 얻었다. 또한 발로 뛰며 모은 옛 지도와 자료, 그리고 생생한 경험이 담긴 여행기를 인터넷 사이트 ‘자유촌(www.jayuchon.com)'에 올려 옛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조선 후기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집필한 『대동지지』에는 모두 열 개의 대로가 소개되어 있다. 그 열 개의 대로는 조선시대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고, 민족의 대동맥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그중 ‘영남대로’(부산 동래-서울)와 ‘삼남대로’(전남 해남-서울)를 두 발로 걸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길이 있는가 하면, 사라져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길도 있었다. 비행기로 가면 1시간이 안 걸리고, KTX를 타도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그와 그의 가족은 보름이 넘게 걷고 또 걸었다.

저자 김재홍·송연 부부는 영남대로 950리 삼남대로 970리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우리 옛길과 마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 만남을 책으로 엮어냈다.


<책속으로>
첫째 마당 영남대로(동래대로) 950리
1. 동래 - 물금 [28km] 출발기점을 찾아라
2. 물금 - 밀양 [36km] 목숨 걸고 뛰려무나
3. 밀양 - 화양 [33km] 옛길만 찾고 돈길은 언제 찾을까
4. 화양 - 대구 [33km] 장마전선, 쫓기는 몸과 마음
5. 대구 - 칠곡 [11km] 도보여행의 적, 장맛비
6. 칠곡 - 구미 사창 [33km] 길을 끊는 길, 길을 잇는 길
7. 구미 - 상주 낙동 [33km] 반갑다, 서울나들길
8. 상주 - 점촌 [36km] 길에서 만난 행운의 전령들
9. 점촌 - 문경 [24km] 문경 가는 날
10. 문경 - 충주 살미 [32km] 문경새재, 새야 새야 쉬어가렴
11. 충주 살미 - 용원 [32km] 주전들의 허수아비 아내
12. 용원 - 생극 - 죽산 [32km] 조선시대 십 리는 몇 킬로미터일까
13. 죽산 - 용인 [35km] 세상에 우산 쓰는 짐승 사람밖에 없다
14. 용인 - 성남 옛골 [31km] 옛이야기와 함께 넘는 고갯마루
15. 성남 옛골 - 서울 [20km] 비로소 시작이었네

둘째 마당 삼남대로(해남대로) 970리
1. 해남 관두포 - 영신리 [26km] 국토는 지금도 늘어나는 중
2. 해남 영신리 - 영암 [32km] 생명의 길, 상생의 길
3. 영암 - 영산포 [31km] 조선 여인을 닮은 땅
4. 영산포 - 하남 [34km] 율정삼거리에서 다산 형제를 만나다
5. 광주 하남 - 장성 북이 [31km] 인도 가는 중
6. 장성 - 정읍 [21km] 어여쁜 눈썹바위, 가래를 찾아라
7. 정읍 - 태인 [16km] 천사와 함께 하는 여행
8. 태인 - 삼례 [38km] 걸으며 무엇을 보았나요
9. 삼례 - 연무 [30km] 이몽룡의 흔적을 좇아서
10. 연무 - 계룡 [32km] 외로움을 아는 길
11. 계룡 - 공주 [14km] 농민이 꿈꾼 세상을 넘어
12. 공주 - 광정 [22km] 엉터리 대동여지도
13. 공주 광정 - 천안 [30km]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14. 천안 - 평택 칠원 [28km] 흥타령은 길타령에 묻히고
15. 평택 칠원 - 수원 [30km] 헌길 줄께 새길 다오
16. 수원 - 과천 [24km] 화성은 안녕하신가
17. 과천 - 서울 숭례문 [19km] 길 위의 나날들

셋째 마당 도보여행 이렇게 떠나자

부록 1 《대동지지》의 옛길 경로와 현재 지명 비교
부록 2 한글대동여지도

잔도(棧道)란 험한 벼랑에 나무로 선반처럼 내매어 만든 길로서 영남대로 옛길에는 황산잔도와 작천잔도, 그리고 앞으로 걷게 될 토끼벼루가 대표적인데, 황산잔도는 걸을 수 없었지만 이곳 잔도는 위험천만하게나마 걸을 수 있었음은 옛길을 찾아 걷는 의미로만 보아도 최고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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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그렇듯 동물도 그들의 가족과 무리를 잇는 길이 있음에, 길을 만든다며 다른 길을 허투루 끊어도 되는 것인지. 누구든 생명의 길을 가질 권리가 있으니 길을 사람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동물을, 심지어 사람까지 위협하는 자동차만의 길이라면 결코 생명의 길이랄 수 없다. 무엇을 위한 길인가. 상생의 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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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경상도 서남부지역은 성주, 상주로, 서북부지역인 거창 쪽에서도 김천을 거쳐 상주에 모여 문경새재를 넘었다. 김천에서도 추풍령을 넘어 충청도의 영동과 청주를 거치는 영남우로가 있으나 대부분 새재인 영남대로를 이용하였고, 영남좌로인 울산에서도 죽령을 넘기보단 안동에서 바로 새재를 넘는 길을 주로 이용하였다. 안동에서 예천, 문경으로 이어지는 이 경로는 임진왜란 때 제2군이 주력군과 합류하기 위해 문경으로 이동한 경로이기도 하다.

답은 찾았으니 노인과의 이런저런 얘기는 어뚱하게 흐르더니 급기야 밥 먹고 가라고 붙잡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미 먹었다며 자리를 터니 딸자식 생각난다며 무어라도 먹고 가라는 노인에게 거듭 조아려 사양하며 돌아서는데 콧등이 짠해 온다. 우리 옛길의 마음.

아내가 무겁게 안고온 오줌보를 터트리면서 너무 뻔뻔하지하자 남편이 자연인이 되는
게지라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닿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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