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가야지했던 전시회를 하루에 다 가서 보았다... 아~ 힘들다...
처음으로 가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정말 크고, 넓다...
루브르박물관전은 수작들은 몇편 오지 않은듯하지만, 유화의 맛과 그림의 방대함, 섬세함.. 그리의 빛의 예술을 느꼈다.
예술의 전당에서 본 반고흐에서 피카소까지는 정말 가슴이 설래였던 멋진 전시회였다.
미술책에서 꼬딱지만한 사진으로 보다가 거장들의 명화를 바로 눈앞에서 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거기에다가 오디오북을 2000원에 대여해서 들은것이 그림에 대한 사연과 지식을 들으니 더욱 다가온다...
로뎅의 청동시대, 생각하는 사람,
고흐의 생레미의 포플러,
카이유 피사로의 에르미타주 숲의 언덕은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회 잘보고나서 선영이가 영성이를 엮어서 강남에서 술한잔하고, 인옥이도 나중에 합류해서 한잔...
암튼 내 평생에 잊지못할 하루였다...
청동시대를 그리며... |
청동시대를 그리며... - 감추기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은 11시가 개장 시간이다. 개장 시간 전부터 관람객들이 모여들었다. 3층 전시장 앞에서 안내원들이 입장 속도를 조절하며 관람객들을 입장시키고 있었다. 전시장이 매우 좁은 관계로 관람객 이동을 조절하기 위하여 취하는 조치였다. 전시장 입구의 벽은 미국 5대 미술관중의 하나인 클리블랜드미술관을 촬영한 사진으로 치장되어 있고 입구는 클리블랜드 미술관 입구의 돌기둥을 흉내 낸 석고기둥을 만들어 장식하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 ‘예술은 근대의 종교이며 미술관은 그 사원이다.’라는 앙드레 말로의 문구(文句)를 오른쪽 벽에 붙여 두었다. 앙드레 말로라면 동남아 문화재를 약탈하는 데 앞장선 소설가로서 뒤에 프랑스의 외무장관을 지낸 프랑스의 지성인이다. 그의 소설 ‘왕도의 길’은 캄보디아 앙코르 왓트의 유물을 뜯어가는 체험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앙드레 말로이다. 그는 이 약탈사건을 감행하다 적발되고 결국 프랑스라는 막강한 국가 권력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가 있었다. 자신이 근대의 종교라고 명명한 ‘예술’의 세계를 도적질한 앙드레 말로의 저 문구(文句)는 너무도 아이러니컬하다. 앙드레 말로의 문구(文句)대로라면 한 나라의 예술품은 그 나라의 종교적 유물이며 그 나라의 정신적 자산이다.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남의 문화재를 약탈하려고 했다니. 만일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노트르담의 성당 석조물을 뜯어가려 한다면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이며 그들은 캄보디아의 행동을 무엇이라고 규탄(糾彈)할까. 병인양요(1866년, 강화도)를 일으키고,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 간 문화대국 프랑스로부터 우리는 아직도 그 문화재를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루브르박물관은 남의 나라 문화재를 약탈한 창고라고 이르지 않았던가. 약탈의 대명사 루브르박물관 특별전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앙드레 말로와 대비하면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진정한 예술 종교주의자다. 일본 식민주의자들이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를 짓고 광화문을 헐려고 하자 그들에게 외친 야나기 무네요시의 소리는 그의 예술 사랑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지순한 정신이다. 일본식민주의자들이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고 그 정문인 광화문을 헐려고 했을 때, 일본 지성인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하여 어떠한 비판의 소리도 하지 못하였다. 이때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인이 일본을 침략하고 에도성 안에 일본총독부를 건립하고 에도 성문을 헐려고 한다면 일본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글을 써서 일본식민주의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그런 야나기 무네요시를 생각하면서, 벽에 당당하게 붙은 앙드레 말로의 문구(文句)를 바라보니 그 문구는 요란한 헛구호요 기만의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말이란 언제나 행동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기에 어떤 이가 20세기의 가장 위선적인 가짜 지성인을 앙드레 말로로 꼽기도 하였다. 앙드레 말로의 씁쓸한 문장을 대하고 정면으로 서면, 정면 벽에 붙은 클리블랜드미술관을 상공에서 찍은 평면도를 볼 수 있다. 4만여 점의 소장품과 70여 개의 전시실을 갖춘 클리블랜드미술관의 항공사진 평면도를 게시한 의도는 무엇일까. 한가람미술관의 왜소함과 4만여 점 중 94점을 가져왔는데도 한가람미술관이 감당해 내지 못함을 변명하기 위함일까.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위용을 강조하여 여기 전시품들의 품격을 높이기 위함일까. 클리블랜드미술관은 너무나도 위풍당당했다. 이 전시는 “조선일보 창간86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전이다.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럽 인상파, 후기인상파, 아방가르드 작품들 중에서 엄선한 걸작 94점을 전시한다.”고 안내지에 적혀 있다. 즉 이 전시는 인상주의로부터 2차 대전 직후까지의 서양미술의 흐름을 알아본다는 의도가 있으며, 이 전시를 통하여 우리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반 고흐, 고갱, 색채와 형태의 미술 혁명을 탄생 시킨 마티스와 피카소, 아방가르드 예술의 실험 정신까지의 서양 미술을 개략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전시장은 인상주의 시대, 드로잉 존, 후기인상주의, 근대조각의 선구자, 20세기 아방가르드, 북유럽의 빛 등 6개 존으로 꾸며져 있다. 첫 번째 전시실로 들어섰다. 인상주의 시대는 대체로 1860년 초로부터 1886년까지라고 벽면 안내문에 설명되어 있다. 인상주의는 색채와 빛을 통한 찰나의 시각적 감각 곧 인상을 중시한다. 그래서 인상주의 작가들은 자연의 감상이 아닌 자연의 체험을 그린다고 한다.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로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가 있다. 1구획으로 들어서서 그림들 전체를 휘둘러본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나열해 본다. 우아한 여인들의 초상화가 빛을 발산하고 있다. 소파에서 한껏 폼을 잡은 여인, 아이와 더불어 앉아 있는 여인,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소녀로 자리한 초상화(르누아르의 ‘로맨 라코양의 초상’) 등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구스타브 쿠르베의 ‘알프스의 파노라마 경치’가 내게는 가장 멋지게 들어왔다. 봉우리에는 흰 눈이 덮여 있고 검초록 빛으로 어둡게 채색된 산이 웅장한 연봉을 이루고 있다. 산기슭 아래쪽 평원에 흑염소 몇 마리가 있고 목동이 질펀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산의 웅대함과 잘 대비되어 있다. 오른편이 빈 상태로 있는 것은 이 작품이 미완성이기에 그렇다고 한다. 2구획으로 들어서니 시원시원한 풍경화가 주목을 끈다. 모빌의 ‘바닷가’, 바 뫼의 ‘세느강변’, 카이유의 ‘퐁투아르의 수문’은 인간의 영원한 고향인 자연의 세계를 포근하게 잘 묘사하였다. 이 그림들은 무한한 정겨움으로 들어오는 명화라는 느낌이 든다. 풀밭에서 독서하는 여인의 모습도 자연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어서 좋다. 풍경 속에 인물이 등장하는 풍경화는 이 시기에 등장한다. 르누아르의 ‘사과 장수’의 파스텔화 같은 불그스레한 색채가 따스하다. 그 옆에는 클로드 모네의 ‘빨간 스카프를 두른 모네 부인의 초상’이 밖에서 창문 안을 응시하고 하고 있다. 애처로운 모습의 그녀는 무엇을 응시하는가. 사라져가야 할 인생, 무언가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아쉬움과 애석함을 표현한 것일까. 모네가 이 그림을 완성한 3일 뒤에 그녀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과 모네가 이 그림을 팔지 않고 죽을 때까지 보관하였다는 후문은 이 그림의 애조(哀調)를 더욱 슬프게 한다. 그러한 배경 지식에 의하여 인상주의의 인상이 더욱 강화됨을 느낀다. ‘강이 있는 정원사의 집 풍경’은 어떤가? 과수는 가지를 펼치고 잎을 무성히 달고 햇빛에 반짝인다. 강마을의 집들이 멀리 보인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 풍경 옆에 클로드 모네의 ‘봄꽃’이 감미로운 사랑의 빛깔로 채색되어 있다. 이 구획을 나가는 정면 벽에 걸린 카미유 피사로의 ‘에르미타쥬 숲의 언덕 풍경’도 좋았다. 황혼 무렵은 아니다. 우거진 숲, 무성한 나무, 염소를 끄는 소년의 모습, 빛은 밝은 편인데 소년은 그 아래 보이는 집으로 염소를 끌고 돌아가고 있다. 3구획에 들어서니 후기 인상주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 시대는 근대 회화의 개성의 시대를 활짝 열었으며 평면의 사실적 조화를 추구한 미술사의 마지막 시기라고 한다. 반 고흐가 ‘멀리서 왔고 멀리 갈 사람’이라고 말한 고갱은 회화의 생명을 색채로 보고서 사실의 주관적 감정 표현을 중시했다. 반면에 세잔은 자연의 형태를 원, 원기둥, 원뿔 등의 도형의 결합으로 보고 이 도형들을 그림에 사용했다. 3구획실은 ‘드로잉 존’으로 판화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석판화, 목판화, 드라이 포인트, 에칭 등 판화의 여러 기법에 따라 그 인상이 달리 느껴졌는데 드라이 포인트 기법은 상당히 부드러운 느낌으로 들어왔다. 이들 후기 인상파들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찍어낼까 고민했을 것이다. 번지는 듯한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르누아르의 ‘모자에 핀 꽂기’(채색 석판화)는 엄마 또는 언니가 딸 또는 동생에게 핀을 꽂아주는 애정 어린 판화였다. 침대에서 머리를 단장하고, 풀밭에서 아이를 돌보고,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목욕 후 머리를 말리는 등 당시의 일상생활을 잘 나타낸 판화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뷔아르의 ‘장미꽃 핀 거실 풍경’을 비롯하여 살롱과 일상 거실 생활을 에칭으로 처리한 판화들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고갱의 채색 목판화인 ‘향기로운 섬’에 아름다운 꽃은 피어나는데 검은 색조(色調)의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4구획실 : 세잔과 고흐의 풍경화와 초상화가 중심을 이루는 듯하다. 세잔의 “예술은 자연과 평행선을 달리는 조화이다.”라는 문장이 벽면에서 그림들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이제 야외에서 풍경을 그리되 형태를 분석하고 형태를 단순화한다. 세잔의 ‘비둘기 탑’은 그래서 단순한 형태의 조합으로 그려진다. 고흐의 ‘생 레미의 포플라’와 ‘큰 플라타너스 나무’에 많은 관객들이 집중한다. 근골의 플라타너스 줄기와 뿌리들이 이채롭다. 그가 정신병원에서 침대 시트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고흐의 위 두 그림 중에서는 단연 ‘생 레미의 포플라’가 더 고혹적이다. 하늘은 흰 구름과 함께 요동치고 포플라가 거칠게 흔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정신병 환자의 진동하는 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색채는 맑다. 정신병자의 순수성 때문인가. 그런데 고흐가 나무를 많이 그린 이유를 알면 슬프다. 그의 주변에 무수한 여인이 있었지만 인간들은 모두 떠나더라는 것, 하지만 사람은 가도 나무는 남아 친구가 되어 주더라는 것 그래서 그는 나무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내가 본 고흐의 그림 중에서 삼나무와 밀밭을 중심으로 그린 그의 풍경화가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무를 많이 그린 까닭을 알고 나니 그 그림들이 더 없이 슬픈 마음의 감동을 자아낸다. 그의 마음의 공허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변신의 귀재들 인간들에게 상심한 고흐가 나무 사랑 정신으로 그린 그림들은 인간에 패배한 고흐의 슬픈 자화상이다. 고갱의 ‘파도 속에서’는 진초록빛 바닷물에 나체 여인이 밀려오는 파도를 받으며 등을 보인 채 쓰러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파도 속 여인을 본 고갱이 가슴 속 어떤 응어리를 풀어 버리고자 하는 여인의 처절한 모습을 담아낸 것인지, 아니면 파도 속에서 파도와 여체가 합일하려는 순간의 모습을 포착하려고 했는지. 그녀는 얼굴을 보이지 않고 등지고 있다. 5구획실 : 4폭 병풍의 ‘띠장식 마차’ 작품은 마차가 달리고 강아지가 웅성거리고 아래쪽에는 아이를 안은 듯한 보모에게 개들이 몰려드는 풍경이다. 지오반니의 ‘세간티니의 소나무’는 철쭉꽃을 피우고 바위 옆에 소나무가 둥그스러운 줄기를 부드럽게 쳐올린 대단히 비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그림이다. 지오반니가 인상적으로 본 주관적인 감정의 소나무이기에 그럴 것이다. 사랑스런 부부의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저녁 식사 후의 모습’은 그 어색해 보이는 부부의 모습을 불그스레한 빛으로 색칠하여 오히려 따스한 느낌을 준다. ‘카페 웨플러의 실내 풍경’은 윤곽이 불분명하게 흐릿하게 표현한 것이 특색이며, ‘낭트로 가는 길’은 회색빛 음침한 하늘 아래 마을만 주황빛 색채를 띠고 있다. 쇠라의 ‘멱 감는 사람들’은 소품으로서, 강변에 앉은 중절모를 쓴 사내가 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강에 연한 살색을 칠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려고 한 것인지. 사람의 형태는 없다. 어디서 누가 멱을 감고 있을까. 6구획실로 넘어가려는 벽면에는 로댕의 “나는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내부의 감정을 표현하려 애쓴다.”라는 문장이 붙어 있다. 6구획실은 20세기 아방가르드 시대로서 벽면 안내 설명글의 핵심을 요약해 본다.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가 중심을 이룬다. 야수파와 입체파의 모험에 의하여 아방가르드 시대가 열리는데, 마티스는 야수주의를 통해 색채 혁명을 이룩하고 피카소는 브라크와 더불어 입체주의라는 형태의 혁명을 연다. 쿠프카는 색채와 형태의 신비한 결합에 의한 강렬한 자극을 표현하며 앙리 루소는 자연주의적인 상징주의 작품을 창작한다. 또한 에른스트와 마그리트는 몽환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을 생산한다.’ ‘광부’는 갱을 들어가는지 나오는 것인지 연장을 들거나 맨 광부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다. 그 중 한 광부가 갱도 열차에서 뛰쳐나올 듯이 상당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생활에 지치고 무기력한 광부들의 모습 중 뛰쳐나올 것 같은 한 광부의 모습이 저항적이며 강력한 공격성을 띠는 듯했다. 앙리 루소의 ‘호랑이와 물소의 싸움’은 남국의 밀림 숲이 배경인 듯. 그러나 환한 햇빛 속에서 꽃은 피어나고 과실은 여물고 바나나인 듯한 열매는 풍성하다. 그 속에서 서로 물어뜯고 있는 호랑이와 물소의 모습은 내게는 반어적인 모습으로 느껴진다. 그들의 맹렬한 싸움은 마치 평화스럽게 장난질을 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오리가 있는 정물화’는 주전자와 병들이 비틀거리는 듯하고 가오리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 활력적인 모습이었다. 쿠프카의 ‘항아리 형태의 모습과 두 색의 둔주곡(푸가)’는 다양한 색채와 형태들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듯이 리드미컬한 느낌으로 들어왔다. 후안 그리의 ‘커피 가는 기구’는 분해된 형태들 집합되어 있는데 이러한 모습이 입체주의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든다. 7구획실 :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 피카소 마티스의 ‘화병이 있는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밝은 색이며 혼합색을 사용하지 않고 원색을 사용하였다. 그런 밝음 속에서 유리창을 검은색으로 칠한 이유는 나치체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형태를 단순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니스의 꽃 축제’는 형태가 흐릿하여 뭉개지고 있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데 아내와 딸이 꽃 축제를 바라보는 모습도 윤곽선으로만 표현한 듯하다. 10년 전에 가본 니스 해변과 아주 닮아 있어서 니스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을 충동하였다. 아름다운 니스, 저 꽃 축제의 꽃들이 새들이 되어 지중해를 날아가고 있는 환상을 주었다. 브라크와 피카소의 작품은 입체주의 그림으로서 형태의 파괴를 겹치게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이런 경향과는 달리 피카소의 ‘망토를 두른 여인’은 코뿔 달린 모자를 쓴 여인이 나를 노려보는 듯하였다. 형태의 파괴가 아니라 망토를 두른 단정한 여인을 단순하게 그린 것으로 보였다. 아마데오 모딜리니아의 ‘여인의 초상’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한 채 목이 긴 여인이 우수에 잠겨 있는 듯. 민소매의, 가슴이 깊게 파인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갸름한 얼굴에 홍조를 띠고 쌍꺼풀 눈, 긴 코, 작은 입을 오므린 모습이 현대적 사색의 여인 같은 느낌이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닥터 지바고’의 라라 여인이 지바고를 찾아서 모스크바 거리를 거닐 때의 야윈 얼굴로도 들어온다.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띠었음에도 내게는 우수로 들어온다. 화면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지바고의 장례식에 참석한 라라의 포즈를 취한 것 같다. 이 구획실에 조각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는데, 벽면에는 근대 조각의 선구자 로댕을 설명하는 글이 붙어 있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이나 드로잉을 공부하였으며 공공기념물의 장식적 요소에 지나지 않았던 조각을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격상시켰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로댕의 ‘청동시대’는 오른 손은 머리에 얹고 왼손은 하늘을 향하여 반쯤 구부린 나체의 남성상으로서, 꿈틀거리는 근육에서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조각 작품이다. 그 모습은 고뇌를 뿌리치고 어디론가 향하여 몸부림치는 모습은 아닐까. 머리에 손을 댄다는 것은 무엇인가 뜻대로 잘 되지 않았지만 “아, 맞구나, 맞아!”하며 긍정하는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며, 왼손이 주먹을 쥐고 하늘을 향한 자세는 그러한 긍정의 자세를 밀고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본다. 제목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는 ‘푸르고 싱싱한 시절, 꿈과 이상과 정열을 품던 시절, 이상과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열적으로 살던 아, 그리운 청춘 시절!’ 이러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로댕의 ‘청동시대’에 정감이 간다. 예술품으로서의 정감이기도 하지만, 그 실제적 정감은 언어가 주는 미묘함, 그 언어가 삶의 구체성과 관련된 때문이다. 내게 그것은 명동의 ‘청동’ 다방 때문이요, 공초 오상순 시인이 ‘청동’ 다방에 관련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흘러가 버린 명동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쓴 ‘명동백작’ 책에는, 50년대의 명동 ‘청동’ 다방에 예술인들이 무수히 모여들어 그들이 시대와 인생에 대한 고뇌와 애환을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그 ‘청동’ 다방의 터줏대감이 공초 오상순 시인이며, 그 시절의 무수한 예술인들이 오상순의 노트에 남긴 글 모음이 ‘청동문학’으로 남아 있다. 숱하게 많은 다방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들은 왜 ‘청동’ 다방을 찾았을까? 아마도 ‘청동’ 이름의 미묘성에 현혹되었을 터이고, 로댕의 ‘청동시대’에 보이는 근육의 ‘활력’을 찾으려 한 의도가 있지는 않았을까. 그들은 고단한 시대의 삶에서 꿈과 이상을 잃지 않고 푸르고 싱싱하며 활력이 넘치는 청춘 시대를 살고자 했기에, 뻔질나게 ‘청동’ 다방을 드나들었을 것이라고 어림없는 추측을 해 본다. 그래서 지금 바라보는 로댕의 ‘청동시대’가 더없이 정겹고 따뜻한 인정으로 다가온다. 로댕의 ‘깔레 시민의 한 사람 영웅적인 머리’는 ‘깔레의 시민’ 중 한 사람의 고뇌하는 두상을 조각한 작품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중, 프랑스의 깔레시가 영국의 침략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깔레시를 살리기 위하여 희생을 자청한 시민 여섯 명이 영국 왕에게 죽임을 당하러 가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 로댕의 ‘깔레의 시민’이다. 이 작품은 그들의 용감하고 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고뇌에 차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잘 표현해 낸 작품이다. 그들 중 한 시민의 영웅적인 머리를 조각한 것이 위의 작품으로서, 전체를 위하여 희생하는 인간의 고귀한 정신과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고뇌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모습에서 전율하는 감동을 맛보았다. 피카소의 드라이 포인트와 에칭 작품들로 ‘검정 크레용’, ‘당나귀몰이꾼’, ‘램프 아래의 정물’ 등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램프 아래의 정물’이 단순한 형태의 조합과 색채의 대조로 인하여 독특하였다. 또한 마티스의 석판화와 흑연 작품들도 전시되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부쳤다. 7구획실 끝 부분에 제시된 초현실주의 작품이 친밀감을 준다. 그 이유는 마그리트전시회를 이미 다녀온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의 ‘서로 다른 사물을 덧붙여 겹쳐짐과 포개짐이 주는 묘한 환상’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여서인지 르네 마그리트의 ‘비밀의 생’이 나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는 듯했다. 청명한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다. ‘청명한’이란 ‘티 하나 없이 파란 맑은 하늘, 청정무구의 웃음을 주는’이라는 구체적 자연물로서 추상적 의미를 띠는 초현실의 하늘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이 맑음의 창턱에는 어둠의 돌(혹 검은 나무 등걸인지도 모르겠다.)이 버티고 서 있다. 생뚱맞은 것을 떼어다가 이질적인 상황에 고립시키는 수법.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비밀의 생이다. 저 비밀스런 모습이 우리의 생이며, 우리는 그 비밀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그의 작품 제목을 되도록이면 시적인 의미가 있도록 지었다. ‘비밀의 생’ 작품에 나타난 함축적 의미를 상상하는 것은 초현실의 세계에 우리를 잠기게 하며 그 상상의 세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행복하다. 마그리트의 작품이 그래서 흥미롭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을 패러디한 막스 에른스트의 ‘풀밭 위의 점심’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여인을 징그러운 물고기로 바꾸었으며, 주변 인물들과 과일들을 모조리 없애고 오이와 술병만을 덩그렇게 놓아둔 풍경이 주는 초현실적 의미란 무엇일까. 마네의 여인은 아니 우리는 이미 현대에서 징그러운 물고기로 변신한 것인지. 그 징그러운 물고기는 물을 버리고 왜 풀밭에 나와 있을까. 이 모든 기괴한 형상은 가치가 전도된 현대 문명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소비 문명을 형상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그것은 작가는 늘 오늘의 문명과 인간 세계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작품화하기에 그렇다. 이런 초현실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즐겁다. 작품은 즐거움이고 작품 감상도 즐거움이며 우리의 인생도 즐거움이다. 8구획실로 들어섰다. 프랑스 예술의 영향을 받은, 예술의 변방 지대의 예술품을 전시한 ‘북유럽의 빛’이 주제다. 북유럽보다 북구(北歐)라는 말이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그런 용어로 배웠으니, 그 용어를 떠올리고 그 용어로 웅얼거려야 그 용어에서 음울한 분위기가 묻어나고 사색에 잠길 수 있다. ‘절규’의 작가 뭉크의 석판화 ‘죄’는 머리를 늘어뜨린 나체의 소녀상이다. 그녀는 험상궂은 얼굴에 머리를 풀어헤쳐서인지 마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원죄의 이브 - 사탄 뱀의 유혹에 넘어가 낙원에서 추방당한 이브를 저렇게 그린 것이라고 상상하면 터무니없을까.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할 때까지, 원죄를 짊어진 저 여인은 저렇게 연민의 마녀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저 ‘죄’의 여인을 보면서 영원한 행복의 땅, 에덴동산의 황금시절을 그리워한다. 신에 대한 경건함과 겸손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죄’의 여인처럼 저 모습처럼 될 것이다. 몬드리안의 ‘국화’, ‘들판’도 우수가 깃든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들판’은 전체가 검은빛 색조(色調)이며 짙은 우수의 어둠이 배어 있는 듯하다. 헨리 무어의 조각 ‘세 방향의 조각 두 번’은 활을 쏘는 자세의 특징을 단순화한 작품으로, 곡선과 뾰족한 모서리가 조화하며 힘을 느끼게 했는데, 활의 팽팽한 활시위가 느껴졌다. ‘암스테르담의 건설 현장’을 비롯하여 힘센 노동자상인 듯한 남성 초상화들은 음울함 - 그것이 자연환경 탓인지 혹 현 자본주의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떨쳐내고자 하는 힘이 무섭게 느껴졌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빨강 노랑 파랑의 컴포지션’은 수평선과 수직선을 이용하여 안정과 활력을 나타내고자 하였다고 한다. 수평선이 대지의 안정성을 의미한다면 하늘로 치솟는 수직선은 활동적인 힘을 의미한다. 그 안정과 활력 사이에 세 가지 색이 적절히 자리한 이 단순한 작품이 예술의 창조성을 잘 암시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창조는 단순한 순진성과 명료성에 있다. 8구획실을 나서며 벽면에 걸린 바실리 칸딘스키의 문구에서 예술의 뿌리는 사고이며 예술의 꽃은 문화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예술은 우리 사고의 어머니이며 우리 시대의 아들이다.” - 바실리 칸딘스키 거칠게 돌아보고 허겁지겁 출구를 나오니 시장하다.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인데 성찬(盛饌)도 화후식(畵後食)이 되고 말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주워들은 풍월과 그림에 대한 주관적 인상 묘사를 중심으로 엮어 기억의 창고에 보관하고자 한다. http://blog.daum.net/jongschae/1118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