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iN /성공 & 강연 '에 해당되는 글 561건

  1. 경제세미나 - 한국경제 과거 50년, 미래 50년
  2.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강연 동영상 2
  3. 대한민국 길을 묻다 - 기업 생존의 길, 인간존중 - LG인화원 이병남 사장
  4. [육일약국 갑시다]의 저자 김성오 메가스터디 대표와의 만남!
  5. 대한민국, 길을 묻다 - 대학의 입시열을 대학의 교육열로 바꾸자 - 김영길 한동대 총장 1
  6. 대한민국 길을 묻다 - 틀을 깨면 길이 보인다 - 이면우 교수 (사진보기)
  7. 대한민국 길을 묻다 - 한반도 선진화를 위한 세가지 조건 - 박세일 교수

경제세미나 - 한국경제 과거 50년, 미래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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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지금 어려운데, 그동안 잘산것은 박정희대통령덕분이고, 앞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비스, 의료, 관광 등의 사업분야를 키워야 하는데, 이러기위해서는 의료관련법규와 4대강 정비등을 통해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_-;;
더욱이 지금과 같이 어려울때 상속세를 폐지해서 외국의 자본이 몰려오는것을 기대하고, 소득세의 누진적인 세율을 완화 혹은 폐지를 해야, 탈세도 줄어들고, 공무원들이 비리도 줄어든다고, 마지막으로 경직된 노동시장도 이 기회에 고쳐야 한다는 말씀....

참... 어이가 없었고, 꼭 이나라 대통령과 똑같은 말씀을 하는 듯한 느낌이...-_-;;
어떤분인가하고 혹시나 하고 찾아봤더니 역시나... 아래의 박스 내용을 참고바람...
KBS가 이제는 라디오방송에서까지 정부의 정책을 대변하는 뻐꾸기방송이나 틀어대고 있다니.. 참...


* 세미나 주요내용

제목 : 한국경제 과거 50년, 미래 50년
그리고 현재의 위기
연사 : 김기환 (서울파이넨셜 포럼 회장)
주관 : 한국경영자총협회
일시 : 2009.2.11
- 우선 지난 50년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온 한국경제, 그 성공요인을 분석, 평가, 정리해본다. 이어서 향후 50년 동안 한국경제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 그 미래의 모습을 점쳐본다. 그동안 우리경제의 성공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에 기인하였다면 앞으로는 보다 부가 가치가 높은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금융산업, 의료산업, 관광산업, 문화산업 등에서의 성장역할을 설명했다.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 실현을 위해서 현재 진행중인 금융 및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고,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 제고와 함께 경제선진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제도개혁 추진을 주문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가능성과 기회가 우리앞에 놓여있다고 강조한다.



http://blog.peoplepower21.org/Research/30090

'김기환 포럼'이 대한민국을 개조하고 있다

"산하 기관장을 독식해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관료와 '법조계 삼성' 김앤장, 그 핵심에 놓여있는 '이헌재 사단'. 우리 사회의 극소수 경제관료들이 이른바 '회전문'을 통해 민간과 정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있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보다 더 큰 '실세'가 있으니, 바로 '서울파이낸셜포럼(SFF)'이다. 서울파이낸셜포럼(회장 김기환 골드만삭스 고문)은 민ㆍ관ㆍ학을 막론한 금융계 인사 50~60명으로 구성된 비영리 포럼이다. 이 포럼은 2003년 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내놓은 10대 아젠다 중 하나인 '동북아 경제허브론'을 '동북아 금융허브론'으로 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물류파와의 장렬한 싸움에서 승리한 이들의 존재는 이제 희미해졌지만, 이들이 주창한 금융허브론은 노무현 정부 들어 자본시장통합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진화'를 거듭했다. 이제 금융허브론은 하나의 경제정책이나 대외정책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를 관통하는 사실상의 '포괄적인 국가 개조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들은 국민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이런 식으로 개조해도 괜찮다'는 어떠한 위임이나 계시도 받은 바 없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 극소수의 금융 엘리트와 관료들이 '조용히' 그러나 '체계적으로' 움직여 가는 사회, 이런 사회를 과연 민주주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19일 오후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소장 이병천 강원대 교수) 주최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심포지엄 '세계화 시대, 관료독주와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이 같은 내용의 주제발표를 했다.


지금 경제위기는 우리만 겪었던 1998년 외환위기와는 다르다. 미국에서 시작된 현 위기는 선진국, 후진국할 것 없이 모든 나라를 휩쓸고 있다. 우리도 금융 분야에서 먼저 타격을 입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위축은 기업투자를 어렵게 하는 등 실물 부문으로 악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올해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수습대책은 크게 네 가지다. 금융경색 완화,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 추진, 금리인하, 건설 및 가계 부문 지원 등이다.

아울러 중장기 개혁 추진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시장기구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시장기구가 제대로 발휘하려면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한다. 여러 산업에 걸쳐 존재하는 진입장벽도 없애고,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도 정부가 사전에 금지한 것 외에는 모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포괄주의(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로 가야 한다. 기업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금문제 개선을 위한 세제개혁위원회도 출범시킬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지속적인 대외개방과 교육개혁, 출산율 확산이 뒤따라야 한다.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한ㆍ미, 한ㆍ중과의 돈독한 관계유지 등 올바른 외교정책도 수행해 가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 지도자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경영자들은 경영혁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 향후 50년 역사는 매우 밝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난 5000년 역사도 바꿀 수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극복할 능력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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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강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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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괜찮다고 했던

스트브잡스의 스탠포드대 졸업식 강연...


짧지만 간결하고, 강력한 메세지가

평소에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이 생각났던

정말 뜻깊은 내용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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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하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갈구하라. 우직하라.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갈구하라. 우직하라.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구하면서, 우직하게 살아가십시오.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영문 번역 원문은 http://allenjeon.tistory.com/212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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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 기업 생존의 길, 인간존중 - LG인화원 이병남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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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과 인간존중이라는 기본적인 맥락속에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간에 힘을 합치고 존중하며, 개개인은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지금의 위기를 탈출할수 있지 않을까하는 약간은 상투적이고, 개인에게 어떠한 실천적인 메세지를 주기보다는 커다란 틀만을 이야기했던 강연... 좀 더 개개인들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지 않았나 싶다. 개이들에게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움직여라라고 말하기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나 방법을 제시했다면 더 괜찮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던 방송...

◎ 방송 : 2009. 2. 22 (일) 밤 11:30~12:20(50분) 1TV

◎ 출연자 : 이병남 사장 (LG 인화원 사장)

금융위기가 빠르게 실물로 전이되면서 기업들이 생존의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기업들의 위기는 곧 일자리의 위기다. 유례가 드문 경제위기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LG 인화원의 이병남 사장.

국내에선 보기 드문 인사 전문가로서 그동안 획기적인 인사개혁을 단행하며 ‘LG의 인재 인큐베이터’를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이병남 사장이 제시하는 위기 극복 방안은 바로 ‘사람’!

생태계 속에서의 기업

 기업 생존의 길- 고객 가치 실현

 기업 경영의 근본- 인간존중

 인간존중 경영, 어떻게 할 것인가?

 이병남 사장이 제시하는 대한민국의 길

 <브리지1.>

기업은

시장이라는 생태계 속에서

오래도록 생존하고

번영하고자 하는 생명체다

 <브리지2>

기업은 고객과 사회에

유익함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고,

고객과 사회는

이윤이란 선물을 기업에게 되돌려 준다.

  <브리지3.>

고객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배려하는

인간존중 경영이 가장 중요하다

 <브리지4.>

배려를 통해 존재감을 심어줄 때

구성원들의 창의성이 발현되고

고객가치도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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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일약국 갑시다]의 저자 김성오 메가스터디 대표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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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일약국 갑시다
경영자독서모임 - 김성오 육일약국갑시다 강연 오디오북(mp3)
KBS 경제세미나 - 매출 200배 성장의 비밀, 육일약국갑시다의 김성오 메가넥스트 대표이사

매주 월요일 저녁, 사 회 유명인사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7시에 진행되고 있는 MBS는 경영.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사회. 문화. 과학. 예술 전분야에 걸쳐 우수도서를 엄선하여 해당도서의 저자를 직접 모셔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470여명의 사회 각계 저명인사가 초청되어 책의 내용에 대해 강의하고 회원들과의 질의응답 및 토론을 통해 그들의 출판동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 그리고 글의 행간에 담긴 진의를 전하는 뜻깊은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충정로역 5호선
주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295-60
설명
상세보기

일자 – 2009223일 오후 0

7:00~09:00

장소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충정로역 2, 5호선 4번 출구)

참가 신청– 2009217일 까지

당첨자 발표 – 2009. 02. 18

초대인원 – 25(11)

참여방법 - 보도자료를 스크랩해 가신 후 스크랩한 주소와 함께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저자와 만나는 경영자 독서모임 MBS 

 지난 15년간 성공하는 경영인의 길잡이가 되어온 MBS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산업정책연구원에서는 정보화. 세계화로 대변되는 21세기에 ‘창조적 비전’과 ‘혁신의 열정’을 지닌 기업 경영자. 사회 각계인사. 기업체 임직원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난 1995년부터 경영자 독서모임(Management Book Society : MBS)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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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 대학의 입시열을 대학의 교육열로 바꾸자 - 김영길 한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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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학교 총장님의 강연인데, 우리나라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정상화가 될지를 잘 설명해주었고, 본인이 직접적으로 한동대학교에서 실천을 해서 공감을 이끌어 낸듯...
한동대는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어떤 학교인지는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는데, 학생들이 세계 곳곳에 우리들이 흔히 동경하는 직업들을 가지고 나가있고, 무전공으로 학생들을 뽑은후에 배워가면서 학생 스스로 자신의 전공과 부전공을 선택을 하게하고, 영어, 중국어, 컴퓨터 등만을 필수로 가르킨다고...

무엇보다도 김영길 총장님이 강조를 하는것은 대학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고려대의 고교 서열화나 본고사 부활, 특목고 가산점, 국제중학교, 사교육시장 확대 등등 초중고 교육현장이 상당히 시끄러운듯하고, 이런 사태는 대학교육을 바로 잡지 않고는 미봉책일뿐 계속 문제가 있을것이다.

본고사나 수능이나 다 일장일단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학교의 능력을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유능한 학생을 뽑기위해 본고사 부활이나 고교서열화등을 시행하는것도 학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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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유능한 학생들을 뽑아놓고, 과연 대학들이 등록금이나 비싸게 받는것 외에 무엇을 제대로 하냐라는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것이다.
모든 학생이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대충대충 다녀도 크게 문제가 없지 않는 이상.. 졸업이야 개나소나 다하는것이고...
이러다보니 전체적으로 유능한 학생들을 뽑아서 그대로 졸업장만을 쥐어주고 졸업을 시키는것은 아닌지하는 우려가 든다.

매번 초중고등학생들을 들들 볶아서 사교육 시장에 내몰고, 초등학생들도 저녁까지 학원에 남겨둘것이 아니라...
이들은 적정수준의 교육수준을 유지시키면서 자신들이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교육, 공부는 자신이 원하는것을 찾게 해주고, 대학에 가서 그때부터 밤늦게까지 자신의 꿈을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것이 아닐까?



한동대총장의 강연을 들으면서 대학이 좋은 학생만을 뽑는것에만 신경을 쓰지말고, 좋은 학생을 만드는것에 신경을 써야 지금처럼 서열화된 대학의 수준편차도 많이 줄어들것이고, 초중고학생들의 학업방식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중요한것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사람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방송에서 나온 일례로 한동대에 산업디자인학과는 무전공으로 입학을 하기때문에 그림을 배워보지도 않은 학생들도 전공 선택을 하고 배우지만, 사회에 나와서 유명 산업디자인학과에 지지 않는 실력과 수많은 공모전에서 유명대학에 뒤지지 않는 작품을 내놓고, 상을 받는다고 한다.
그들은 중고교시절에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무슨 미대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는 기계도 아니였고, 자신이 원하는것을 찾고 그후에 그것에 매진한 학생들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입시정책이 바뀌고, 점차 본고사 형식의 시험들이 부활하고, 국제중처럼 그 연령도 초등학교까지 내려가면서 예전에 사교육의 폐해가 극심했던 예전으로 다시금 돌아가고 있는 요즈음에 정말 대한민국의 교육에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몸소 실천을 해온 그에게서 우리의 앞날을 다시금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보았으면 한다.

아이비리그의 한국인

◎ 방송 : 2009. 2. 8 (일) 밤 11:30~12:20(50분) 1TV

◎ 출연자 : 김영길 한동대 총장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꿈’


끝나지 않은 ‘교육실험’

 

김영길 총장은 3無 (무전공, 무학부, 무계열), 복수전공 필수, 무감독 양심시험,

세계로 뻗어 나가는 틀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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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 틀을 깨면 길이 보인다 - 이면우 교수 (사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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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페러다임이나 틀을 깨고 새로운 시각에서 앞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라는 취지의 말씀...
그러기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것은 창의성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다양한 설명을 해주었다는...

국가의 목표가 4만불달성이라는 말은 젊은이에게 자네 꿈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연봉 4억입니다라는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에서 나또한 고정된 틀속에서 구호와 선동속에서 살아온것은 아닌지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다만 개인적인면에서 그 틀을 깨거나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면적에서 공감은 하지만, 뭘 어떻게라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던것이 좀 아쉬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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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제 3편,“틀을 깨면 길이 보인다”

- 이면우 교수 -

 

 

◎ 방송 : 2009. 2. 1 (일) 밤 11:30~12:20(50분) 1TV

◎ 출연자 : 이면우 서울대 교수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사회에 보이지 않는 틀


틀에 갇히면 어떻게 되는가


 

틀을 깨라! 과감히!


 

틀을 깨지 못했던 이유


 

우리에겐 변혁의 힘이 있다

 


 

한국의 창의성을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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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 한반도 선진화를 위한 세가지 조건 - 박세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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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자이면서 뛰어난 실천가인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 법대 교수를 지낸 그는 경실련의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정치가의 길을 거쳐 이제 대한민국, 한반도의 ‘선진화’를 위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박세일 교수는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이 위기의 시대를 뛰어넘고 선진국가로 나아갈 국가 비전을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의 21세기 새로운 국가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가? 명실공히 세계 일류 선진국의 일원이 되는 길, 즉 선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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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제 2편, “한반도 선진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 방송: 2009. 1. 18 (일) 밤 11:30~12:20(50분) 1TV

◎ 출연자 :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한반도 선진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주제로 한반도선진화재단의 박세일 이사장으로부터 대한민국의 국가 비전과 전략을 듣는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 목표는 무엇인가?

선진화,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1. 경제적 선진화

2. 정치적 선진화

3. 사회적 선진화


선진화를 위해 ‘공동체자유주의(Communitarian Liberalism)’를 표방하라

  선진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

 

1. 창조 국가

2. 조화 사회

3. 통일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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