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드림 - 제러미 리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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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엔트로피'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 제러미 리프킨은 과학기술 발전이 세계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특히 '노동의 종말'(1995)은 노동 시간 삭감을 위한 사회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바이오테크 시대'(1998)는 생명공학 연구가 초래할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소유의 종말'(2000)에서는 “소유의 시대”는 가고 “시간과 체험의 상품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진단했고, '수소 혁명'(2002)에서는 “혁명적인 수소 에너지”가 세계 권력 구조를 뒤흔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해당 출판사가 저자를 소개한 발문이다.

 

그대로다. 제러미 리프킨은 소위 ‘점쟁이 빤스’를 입은양 서슴없이 미래를 말하는 미래학자들과 격이나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그의 통찰은 시대를 관통하고 그가 제기한 문제들은 늘상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필자가 아는 한 동서를 통해 이만한 통찰력과 안목을 가진이를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필자는 그의 책들을 반복해서 읽으며 미래를 고민했고, 그가 던진 메시지는 늘 필자의 가슴을 강렬하게 파고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는 문제부터 본다. 현실을 직시하고 또 응시한 다음 고개를 든다. 통찰(通察)은 간과(看過)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간과’는 문자 그대로의 ‘흘려버림’이 아니라 부감(俯瞰)의 힘에서 나온다.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았다고 말 할 수 없고, 나무만 보고서 숲을 보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과 유럽을 다룬다. 정확하게는 ‘미국식 양식’과 ‘유럽식 양식’의 차이를 다룬다. 제목만보면 미국식이 아닌 유럽식 양식의 승리를 선언 할 것 같고, 실제 내용도 그렇게 전개된다. 하지만 그가 희망하는 것은 ‘조화’다. 대척점에 있는 두 가지 ‘양식’을 두고 굳이 하나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장점을 취하면 길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먼저 책 내용을 살펴보면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에게 선풍요로운 땅, 기회의 땅으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도전정신에 입각한 자수성가의 신화가 물질만능주의로, 개척과 모험 정신은 한탕주의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더 이상 미국에는 희망이 없다. 아니 최소한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의 수가 많다.

 

계급사회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꿈구던 그들의 선조들과는 달리 경제적 성공을 기반으로 한 신귀족들이 깊은 해자를 파 버린 것이다. 어떤면에서는 중세의 장원경제보다 미국의 경제 시스템은 강고하고 이기적이며 소수 지향적이다. 부의 집중은 도를 넘었고 계층간, 민족간, 인종간의 차별은 그 어느곳보다도 심각하다. 뿐만 아니다. 그들이 구축한 종교적 공동체는 미국을 통합하는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이슬람과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은 모두 적이 되었고 미국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경찰국가가 되어 세계 질서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했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미국은 세계질서의 변화를 주도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미국식 질서의 뿌리를 이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미국보다 오히려 부드러움을 앞세운 유럽이 변화의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세계최대의 탄소배출국인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배척한 반면 유럽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우선시했다.

 

그의 저작들이 그러하듯 이 책에서도 담론만 늘어 놓지 않는다. 그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부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파헤치고, 이와달리 공동체와 삶의 질을 더 중시하는 ‘유러피언 드림’의 핵심을 대비시킨다. 그가 간파한 ‘아메리칸 드림’의 ‘배타성’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성과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의 관점에서는 이제 방향을 틀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하기 위해 사는 미국인’과 ‘살기 위해 일하는 유럽인’의 차이를 주목한다. 아울러 초기단계의 발전은 아마추어 엔지니어들의 성과주의에 의해 달려갈 수 있지만, 인간의 세기를 맞은 지금은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손을 맞잡고 나아가야 하는 시대이며 이미 그 성과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실제 미국인들의 근로시간이 유럽인보다 많음에도 생산성은 유럽이 추월하기 시작했고 GDP, 삶의 질, 환경,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유럽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더구나 유럽의회는 정치, 경제부분에서 상당한 수준의 단일화를 이루었고, 운송, 에너지, 통신부문에서 유럽 전체를 단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트랜스 유러피언 네트워크'(TEN)와, 범유럽 교육 프로그램 등을 갖추며 경제뿐 아니라 교육, 인재,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네트워크화된 유럽"을 꿈꾸고 있다. 리프킨은 이 책을 통해 생각을 바꾸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인권, 에너지, 정치, 사회, 경제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지만 읽기는 무척이나 수월하다. 어쩌면 이 정도 책이 이렇게 수월하게 읽힌다는 자체에 더 많은 점수를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설득력이 뛰어나다. 아울러 이 책은 우리에게 숙제를 던진다. 아울러 그동안 추격성장을 위해 우리가 선택한 것은 미국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열독을 했다고 알려진 책인데,  책을 읽으면서 노 전대통령이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길은 과연 어떤 것 이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시골의사 박경철님의 블로그글인데, 개인적으로도 미국식보다는 유럽식 성장, 배분이 옳다고 생각은 하지만, 개괄적인 내용만을 알뿐...
자세한 현황에 대해서는 미흡한데, 꼭 한번 읽어봐야 할듯하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가만히 보다보니, 현정권이 필독서로 읽어봐야 할 만한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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