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 - 인생을 낭비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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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 전 결백합니다. 죽이지 않았어요. 증거도 뒤집어 씌운 거요.

심판자: 그건 사실이다. 넌 살인과는 상관없어.

빠삐용: 그렇다면 무슨 죄로?

심판자: 인간으로서 가장 중죄. 인생을 낭비한 죄!

빠삐용: 그렇다면 유죄죠.. 유죄.. 유죄.. 유죄..

절해고도의 감옥에 갇히게 된 죄목이 금고털이가 아니라...
젊은 날을 아무렇게나 보내버린 것임을 인정하게 된것이다.

친구 드가가 몰래 넣어 준 코코넛이 발각되어 빠삐용은 식사량이 반으로 줄고 징벌방에 6개월 간 감금당하게 된다.
구타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잠시 잠에 빠진 빠삐용은 꿈 속에서 저승의 심판자들에게 재판을 받는 장면...

빠삐용.. 몇번 봤던 기억은 나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에 더스틴호프만을 뒤로하고 절벽을 뛰어내려서 미지의 바다로 탈옥을 시도하는 빠삐용의 모습...
오늘 책을 읽다가 위의 인생을 낭비한 죄! 라는 구절을 읽고 가슴이 철컹했다...

나도 유죄겠지만.. 정상참작을 받기 위해서 지금부터라고 분발해야 겠다...

원 제 : Papillon
감 독 : 프랭클린 J. 샤프너
주 연 : 스티브 맥퀸 , 더스틴 호프만
각 본 : 로렌조 셈플 주니어,달톤 트럼보
촬 영 : 프레드 J. 코네캠프
음 악 : 제리 골드스미스
편 집 : 로버트 스윙크
미 술 : 안소니 마스터즈
장 르 : 드라마
개 봉 : 년 월 일
등 급 : 18세 이상 관람가
시 간 : 150 분
제작/배급 : -
제작국가 : 미국
제작년도 : 1973 년

프랑스령인 적도 부근 기아나로 향하던 죄수 수송선에서 빠삐용(Henri 'Papillon' Charriere: 스티브 맥퀸 분)과 드가(Louis Dega: 더스틴 호프만 분)는 서로 만난다. 바비용은 무죄지만 살인죄로 그리고 드가는 위조 지폐범으로, 죄수들이 겪는 끔찍한 일들을 겪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빠삐용과 드가 사이에는 짙은 우정이 오간다. 빠비용은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붙인 검사에 대한 복수 때문에 드가는 아내에게 당한 배신 때문에 탈주를 하기로 한다. 그러나 첫번째 탈주에서 이들은 실패하여 무시무시한 독방에서 2년을 보내게 되며 빠삐용은 다시 탈주를 시도하여 겨우 콜롬비아에 도착하여 지내다가 수도원의 원장에게 속아 다시 세인트 조셉프의 독방에서 5년을 보내게 된다. 이런 중에도 드가의 우정만이 빠삐용에게 용기를 주는데.

 [스포일러] 이들은 또 다시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상어떼가 득실거리는 악마의 섬으로 보내어진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감옥 중 가장 끔찍한 감옥이지만 빠삐용은 또 다시 탈주를 계획하나 드가는 빠비용과 함께 떠날 수 없는 입장이다. 끝까지 자유에의 꿈을 버리지 않은 빠삐용은 수 십 미터의 벼랑으로부터 야자 열매를 채운 자루와 함께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파도 머리에 가라앉고 떠오르며 그의 모습은 차츰 푸른 바다로 멀어져 간다. 끝없는 푸른 바다에 빠삐용의 모습이 작아져가는 스크린에 끝을 알리는 자막이 겹쳐지며 영화는 여기에서 끝이 난다.


20세기 최고의 모험가로 알려진 양리 샤리에(Henri Charriere)의 상상을 초월한 파란에 찬 갖가지 모험담을 엮은 동명 원작(69년 출간)을 토대로 남미의 프랑스령 기니아 감옥을 탈출하는 주인공 빠삐용(스티브 맥퀸)의 자유에 대한 강렬한 동경과 죄수 드가(더스티 호프만)와의 우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된 명작. 무려 1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하여 완성한 대작이며, 단순한 스펙타클이나 스릴러에 그치지않고 인간으로서 한 남자의 심리묘사를 치밀하고 감동적으로 그렸다. 특히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의 열연과 영화 속 주제가의 선율이 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실존 인물이었던 빠삐용은 탈출에 성공한 뒤 베네주엘라에 도착해서 자유인간이 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광산 노동자, 직업 노름꾼, 은행털이, 요리사, 호텔 지배인, 전당포털이 등 밑바닥 인생을 보내다가 1973년 7월 29일 스페인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물론 그는 자유의 몸이 된 뒤, 딱 한번 꿈에도 그리던 파리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그는 1967년을 기해 자기에 대한 범죄 시효가 말료되자 마침내 니스를 거쳐 파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불과 8일 동안 머물렀을 뿐이다. 그 때 그는 목마르뜨의 벤취에 앉아서 유형지 생활 14년을 자기 인생의 실패로 수용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였다한다. "너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을 받는 네 미래의 주인으로 여기에 있다."라고.

 옥의 티. 실수 장면이 있다. 마지막에 빠삐용이 야자 열매로 만든 보트에 탈 때 보면 바닷물 속에서 잠수부들이 보트를 미는 장면이 보인다.



▲ <빠삐용> 책표지
ⓒ 황소자리
"따귀를 어찌나 세게 맞았던지 다시 일어서기까지 무려 13년이나 걸렸다. 사실 흔히 있는 타격도 아니었던지라 나를 때려눕히기 위해 그들 역시 적잖이 힘들었을 것이다."

1931년 10월 16일 아침 8시 이제 25살이 된 일명 빠삐용(프랑스어로 '나비'라는 뜻) 앙리 샤리에르는 중죄재판에서 살인죄라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몽마르트로 사회의 포주이자 끄나풀인 사람을 살해한 죄'라는 것이 그가 지었다는 죄명이었다. 종신형… 25살의 아름다운 젊음을 그는 나락의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1906년 11월 16일 프랑스 아르데슈에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던 앙리 샤리에르가 산채로 무덤에 파묻힌 듯한 13년 동안 복수와 자유를 위한 치열한 9번에 걸친 탈출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들에게는 스티븐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로 더 유명한 <빠삐용>은 그의 조국 프랑스의 잘못된 사법체계에 맞서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 비로소 참 자유를 쟁취한 한 인간의 자전 실화소설이다.

실화소설인 <빠삐용>은 앙리 샤리에르가 60살이 넘어서야 쓴 소설이다. 카라카스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던 이듬해인 1967년 7월, 그가 <카라카스 신문>에서 알베르틴 사라쟁에 관한 기사를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일 년 만에 자신의 탈출과 수감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해 세 권의 책을 쓴 자그마한 흑인 여성 알베르틴 사라쟁이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읽은 그는 서점에서 앙리 사라쟁의 <아스트라갈>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스프링 달린 공책을 사서 13권의 노트에 자신의 경험을 써내려간 그는 두 달 만에 완성해서 출판사에 넘겼다. 30년이 훨씬 넘었으나 생생한 그의 기억을 토대로 열정적으로 써내려간 글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영화처럼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빠삐용은 종신형을 선고받는 그 순간부터 모두를 상대로 싸울 것을 결심한다. 그에게 '모두'라는 것은 조국 프랑스의 잘못된 사법체계이며, 자기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출세와 이익을 위해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판결을 내리고 또한 동조했던 자들이다.

오직 그는 복수를 위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지옥 같은 절망의 기니아에서 불굴의 정신으로 이겨낸다.

'독방길이는 4미터, 문에서부터 벽까지 작은 보폭으로 다섯 걸음이었다. 책도, 종이도, 연필도 없는 독방, 침묵의 방, 쇠창살로 막힌 창은 나무판자로 완전 봉쇄되어 작은 구멍 몇 개만 희미한 빛을 투과시키고 있었다.'

산채로 차가운 무덤 속에 강제로 묻힌 것 같은 13년의 세월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탈출을 계획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그 세계에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속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살뤼제도의 조세프의 수용생활 가운데 2년의 격리수용소 생활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 곳의 규칙은 딱 한 가지 '입 닥치고 절대 침묵할 것', 그가 수감된 독방은 A동234호, 다닥다닥 붙은 150개의 각 독방엔 괴괴한 침묵만이 흐르고 바로 옆방에 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두툼한 사방 벽엔 쪽문이 달린 작은 철문 하나만 달랑 나 있다. 각 쪽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상부 명령 없이는 이 문을 열지 말 것'

담요 한 장, 구석에는 의자로 쓰이는 시멘트 벽돌 하나, 빗자루 하나, 군용 컵 하나, 나무 숟가락 하나, 사슬이 달린 양동이 변기를 덮는 얇은 철판 하나, 높이는 3미터, 천장에는 철로처럼 두꺼운 쇠창살들이 그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없도록 격자무늬로 가로막고 있었다. 그 위에는 지상에서 약 7미터 높이의 진짜 지붕이 있었다. 그는 혼자 다짐하고 다짐한다.

"이 234호에서 미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2년이면 730일이야, '사람 잡는 섬' 이라는 이 격리소의 별명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건 너 하기 나름이야 빠삐용, '하나, 둘, 셋, 넷, 다섯, 돌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시 돌고,"

그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도는 격리된 수용소에 갇힌 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덤 속 같은 이 침묵 속에서 미치지 않으려고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계획을 했다.

"1년은 365일, 2년은 730일이다. 윤년만 끼지 않는다면… 730일이나 731일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아니 분명 차이는 있다. 하루가 더 있다는 건 스물 네 시간이 더 있다는 얘기니까. 그리고 스물 네 시간이면 긴 시간이다. 고로 스물 네 시간씩 31일은 30일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다. 그럼 시간으로 따져보면… 100일이면 2400시간이다.

거기에 7일을 곱하는 건 아주 쉽다. 그럼 1만6800시간이다. 거기에 30일이 남았으니까 30곱하기 24를 하면 720시간이다. 그럼 총 1만6800더하기 720을 하면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1만7520시간이 된다. 빠삐용 선생, 당신은 밋밋한 벽이 둘러 쳐진 이 특수 제작된 우리에서 짐승처럼 1만7520시간을 죽여야 하는 거야…."


친구가 독방에 지극히 적은 양의 식사에 코코넛과 담배를 몰래 넣어주어 기초체력을 겨우 유지하던 그는 들통 나는 바람에 저녁 식사 금지라는 벌이 받는다. 매일 좁은 독방을 걸었던 운동마저 포기하고 체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밤에는 오직 잠만 자고 낮에는 깨어 앉아 있기만 하는 나날들을 보낸다.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이 어디까지인지 그의 정신력에 감탄마저 하게 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죽음 같은 격리 수용소에서 죽어나가거나 미쳐나가는 사태가 벌어져도 그는 견뎌낸다. 격리 수용소에서 나오게 되는 날을 10일 남겨놓은 어느 날,

그 날은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는데 빛이 들지 않는 어둡고 차디찬 수감소에 강렬한 빛이 비쳤다. 그는 빛을 보고 눈도 뜰 수 없어 얼굴을 가렸다. 그 때 빛이 부드러워지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 대목은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감동이다.

"오, 하나님, 이제야 저를 찾아 주셨군요. 그런데 무력한 당신의 아들은 지금 너무도 슬프고 억울합니다. 제게 왜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맹세컨대, 주님 저는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가련한 아들아, 너의 죄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인생을 낭비한 죄, 너는 그토록 소중한 네 젊음을 방탕하고 헛되게 흘려보냈다. 사랑과 용서를 위해 마련된 시간들을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 채웠다. 자, 눈을 뜨고 봐라. 그러므로 네가 지은 죄는 그 무엇보다 중한 것이다."


그가 마지막 탈출 장소를 택한 곳은 악마의 섬이라 불리는 디아블이었다. 분노와 복수의 일념으로 첫 번째는 간수들을 때려눕히고 병원에서 달아났고, 두 번째는 콜롬비아 리오아샤에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까지는 바란키야에서였다.

그리고 일곱 번째는 밀고로 인해 실패했으며 여덟 번째는 요양소에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악마의 섬 디아블은 그 누구도 탈출 장소로 꿈꾸지 않는 위험한 장소였다. 파도가 가장 사나운 장소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그곳에서 난 떠나야 했다'고 한다.

"정오부터 해질녘 까지 난 그것이 자동으로 반복되는지 아니면 우연한 변화인지 그 거대한 파도의 형태와 주기성을 관찰했다. 아니었다. 그 높은 파도는 한 번도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6미터가량 되는 파도가 여섯 번 밀려오고 난 다음에 연안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높은 파도가 생겼다. 그 파도는 일자로 곧장 밀려왔다.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몸집이 거대해졌다. 다른 여섯 번의 파도와는 달리 파도 머리에 거품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천둥 같은 특별한 소리를 내며 달려 왔다. 두 바위에 부딪쳐 그 사이의 통로로 밀려들어가 절벽에 부딪치면 그 물 더미는 다른 파도들보다 커서 웅덩이 속에서 10초에서 15초 가량 여러 차례 소용돌이쳤다…."


그는 그 높은 절벽에서 몸을 날린다. 사전에 준비했던 코코넛 포대를 의지한 채, 탈출에 성공한 그는 바람과 타도를 타며 대자연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느꼈다.

"엄청난 환희가 밀려들면서 감정이 북받쳐 아이처럼 울었다. 고름이 생긴 눈을 눈물로 씻어내자 눈앞에 총천연색의 작은 크리스탈들이 무수히 반짝였다. 마치 교회의 유리창 같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오늘은 네 편이야 빠삐, 바람, 거대한 바다, 높은 파도, 위압적인 녹색지붕을 머리에 얹은 관목 숲, 그 괴물 같은 자연의 요소들 한 가운데 있으면 자신을 에워싼 그 모든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한히 작게 느껴졌다. 굳이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마치 눈앞에 하나님이 나타나 손끝으로 만질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고 고백하고 있다.

음울한 지하 감방에 한줄기 빛도 없이 산채로 묻힌 채 보냈던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도 어둠 속에서 신을 느꼈던 것처럼 저항할 수 없도록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솟아오른 태양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온 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넌 지금도 고통 받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고통 받겠지만 이번만큼은 네 편이 되어주기로 했느니라. 너는 자유로운 승리자가 될 것이다. 내가 약속하마."

그는 단 한 번도 세례를 받아본 적도 없었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을 그 무엇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람 속에서, 바다 속에서, 햇빛 속에서, 관목숲 속에서, 별들 속에서, 인간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도록 바다에 뿌려놓은 듯한 물고기에서까지도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그는 쓰고 있다.

산채로 무덤에 강제로 묻힌 듯 한 지옥 같았던 '나락의 길'에서 베네수엘라의 평범한 주민으로 새 삶을 시작하기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빠삐용은 그 따귀 맞은 영혼의 13년의 기나긴 자유를 향한 탈출여정 속에서 순간순간마다 신의 손길을 온 몸으로 체험했음을 볼 수 있다.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는 날을 하루를 남겨놓고 있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 제가 기도를 할 줄 모르는 건 용서하시고 제 마음을 봐 주십시오. 그러면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말로는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보일 것입니다. 그동안의 투쟁은 정말로 치열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채찍질을 당하며 골고다의 언덕을 기어오르느라 참으로 힘겨웠습니다. 제가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축복받은 이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당신이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복수를 포기하거라."


조국 프랑스의 소위 문명화된 국가의 잘못된 사법체계와 부조리에 맞선 한 사람의 자유와 가치와 존엄성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워나간 한 인간의 대서사시를 통해 당신은 무엇을 만날까. 빠삐용은 13년의 따귀 맞았던 세월을 통해 만난 것은 그 무엇보다 바로 신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극심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 신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을 때 그에게 빛으로 영상으로 음성으로 대자연의 장엄함으로 만나주었던 그 하나님의 존재 말이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빠삐용을 만나 보시라. 내게 남은 많은 대목 가운데 가슴을 치는 한 마디

'인생을 낭비한 죄, 젊음을 방탕하게 흘려보낸 죄….' 삶의 무의미에 시달리는가. 위로받고 싶은가 '빠삐용'을 통해 진정한 승리와 인간의 존엄을 찾아보시라. 그리고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음성을 들어보시라.
지은이: 앙리 샤리에르

1906년 11월 16일, 프랑스 아르데슈에서 태어났다. 1931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포주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도형지로 보내졌다.

1934년, 생 로랑의 병원에서 맨 처음 탈출을 시도한 이후 11년 간 무려 여덟 차례에 걸쳐 탈출을 계획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마침내 수용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디아블(악마의 섬)에서 코코넛 자루 두 개를 연결한 뗏목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어 탈출에 성공한다.

1944년, 베네수엘라의 '주민'이 되어 그곳에 정착했다. 1968년, 자신의 체험을 풀어낸 소설 <빠삐용(Papillion)>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곧바로 조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각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73년, 그의 저서를 원작으로 한 영화 '빠삐용'이 개봉되면서 다시 한 번 전세계적인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해 7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병원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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