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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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許蘭雪軒 ; 1563~1589.3.9)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서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호는 난설헌이다. 그리고 별호는 경번(景樊)이며 본명은 초희(楚姬)이다. 강릉(江陵) 출생으로 엽(曄)의 딸이고, 봉()의 여동생이며, 균(筠)의 누나이다. 아버지 허엽(1517 - 1580)은 호가 초당(草堂)으로 후에 경상감사를 역임하였고 동서분당 때 동인의 영수가 된 인물이다. 난설헌의 어머니는 허엽의 둘째 부인이었으며 허엽은 첫째 부인인 한씨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과 아들 성(筬)을 두었고 김씨부인과의 사이에는 봉(), 난설헌(許蘭雪軒), 허균(許筠)의 2남 1녀를 두었다.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했으며, 1577년(선조 10)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했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즉, 15세에 김성립(金誠立)과 혼인했으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 남편은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기방을 드나들며 풍류를 즐겼고, 시어머니는 시기와 질투로 그녀를 학대했다. 게다가 어린 남매를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했다. 친정집에는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허균도 귀양가버리자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27세로 요절했다. 이처럼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작품 일부를 동생 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망선요(望仙謠)》 《동선요(洞仙謠)》 《견흥(遣興)》 등 총 142수가 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 《봉선화가》 등이 있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

<브리태니커백과사전>참고

http://kenji.cnu.ac.kr/cho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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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기: 22.5 x 22.5 cm; 출처: '허난설헌연구', 허미자)

그림:《앙간비금도》
           

    * 22.2x12.0cm
    * 종이에 채색
    * 허엽의 12대 종손 소장

"허난설헌의 「앙간비금도」는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소녀가 그림 속의 인물로 등장하는 첫 그림으로 보여진다. 임란 전 조선중기까지의 그림이 중국의 고사인물도나 우리의 산수가 아닌 화보풍의 산수를 그린 데 비해 허난설헌의 「앙간비금도」는 주변의 실경이 등장하는 경우로 조선후기 진경산수와 풍속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여성화가에 대한 소고", 김선희, http://www.femiart.co.kr/gallery/t-history1c.asp)

그림:《묵조도》
           

인터넷"http://kenji.chungnam.ac.kr/my/chohee/life/life2.htm"참고


스타골든벨에 나왔던 문제인제.. 누구인지 몰라서 찾아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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